[MBC '허준'을 보고]정옥자/재미 좇아가다 史實 먹칠할라

  • 입력 2000년 5월 21일 20시 29분


역사드라마는 역사 교육과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는 것일까?

드라마 ‘허준’이 국민드라마로 뜨고 있다. 이 드라마를 역사드라마라고 단정짓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역사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역사드라마라 인정하고 보겠다.

‘허준’이 기존의 역사드라마와 다른 점은 정치드라마가 아니고 의학드라마라는 차별성에 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불타는 허준의 모습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또 허준이 진지한 만큼이나 주변인물들은 가볍게 처리되어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 돋보인다. ‘예진’같은 허구의 인물을 설정하고 있는 점도 드라마를 재미있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권선징악(勸善懲惡: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은 징치한다)이라는 전통적 가치라고 생각된다.

신문에서는 미담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고, 드라마는 온갖 문제가 얽히고 꼬이는 갈등구조만 보여주면서 말초적인 자극과 충격요법만 일삼고 있는 현실에 시청자들은 식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영악스러운 인간들이 주류가 되어 이해관계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재의 삭막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시청자들의 잠재된 욕구로 인해, 자신의 이익보다 환자의 치료에 헌신하는 허준 같은 인물의 매력에 흡인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우리의 불만스러운 의료계를 비춰보는 ‘반면거울’로 삼고자 하는 국민적 갈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드라마로서의 ‘허준’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시대상을 정확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무엇보다 기본적인 역사 사실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다.

허준의 스승으로 설정된 유의태가 허준보다 후대인 숙종대의 실존인물이라는 점, 허준의 생장지는 경상도 산청이 아니라 그의 외가인 전라도 남양이나 그 부근인 해남지역일 것이라는 점 등이 최근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특히 민중의사로 그려지고 있는 허준은 내의원에 근무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처럼 민초들을 가깝게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으리라는 점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역사드라마인 이상 허구는 용납될지 몰라도, 역사적 사실의 오류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허준의 스승으로 가공의 인물을 내세우느니만 못한 것이다.

교수들도 역사드라마를 보고 역사공부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현실에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역사드라마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고증은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역사적 사실고증이 정확하다 해서 재미없는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의 노력여하와 성실성에 달려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역사적 교훈과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사드라마의 제작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실천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정옥자(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규장각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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