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인사-단체 374건 직접 피해” 공소장 적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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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박근혜 前대통령 기소때 명단 첨부
정호승-황현산 등 ‘예술위 위촉불가’… 강은교-박범신 등 48명 ‘불온 작가’
정부 비판한 영화감독-극단, 예술영화 지원사업서 배제돼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구속 기소) 등 청와대가 주도해 좌파 성향 문화·예술인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려고 만든 이른바 ‘블랙리스트’ 명단을 첨부했다.

청와대가 ‘민간단체 보조금 TF’ 등을 통해 배제 대상으로 관리한 문예계 인사는 8000여 명, 단체도 300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특수본의 수사 결과 피해가 확인된 사례는 문화·예술인 142명을 포함해 총 374건에 달했다.

○ 문단의 거물들 ‘불온 인사’로 낙인

25일 본보가 입수한 블랙리스트 전체 명단에 따르면 김 전 실장 등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문예기금 지원 대상자 선정 심사위원으로 추천받은 인사 중 19명을 ‘위촉 불가자’로 낙인찍었다. 여기에는 시인 정호승 정끝별 김사인 씨, 문화평론가 황현산 방민호 씨 등 거물급 문인이 대거 포함됐다. 예술위가 각종 지원사업 대상자 선정을 위해 운영하는 심의위원 후보자군에서도 강은교 박범신 윤대녕 은희경 정여울 씨 등 유명 소설가와 시인 48명이 ‘불온 작가’라는 딱지를 달고 배제됐다.

출판진흥원의 우수도서 보급지원 사업인 ‘세종도서’ 선정에서도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자인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공지영 수필집 ‘수도원 기행’, 이재무의 시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등 문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빠졌다. 이들 작가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등 야당 인사 지지 의사를 표명했거나 제주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5·18민주화운동, 제주 4·3항쟁 등의 문제에 진보적 색채를 보였다는 게 지원 배제 이유였다.

○ “블랙리스트는 밉보인 단체 찍어내는 도구”

블랙리스트는 영화계에도 큰 악영향을 끼쳤다. 청와대와 문체부는 ‘천안함 프로젝트’와 ‘다이빙벨’ ‘지슬’ 등 정부에 비판적 내용을 담은 영화 연출자와 관련 기관들을 통째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각종 예산지원 사업에서 솎아냈다. 이들 영화를 상영한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 아리랑시네마센터 등은 2014∼2015년 각각 5000만 ∼1억 원 규모의 정부 지원이 취소됐다. 박찬경 영화감독은 형인 박찬욱 감독이 야권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2015년 예술영화 지원 사업에서 제외됐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예술위 공모 사업에서 배제된 공연·예술단체는 총 107곳이다. 이 가운데 37곳은 ‘배제 대상’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실제로 여러 사업에서 연거푸 탈락했다. 극단 하땅세는 무려 14차례나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됐으며 전통연희단 잔치마당(12회), 연희단거리패(8회), 그린피그(6회) 등 극단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봤다. 특수본 관계자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본 극단 중에는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 아닌 곳도 다수 있다”며 “블랙리스트는 일관된 기준 없이 정권에 밉보인 예술단체를 찍어내기 위해 작성된 명단”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neo@donga.com·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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