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촉법 사라져 대출연장 힘들어져… 부도 공포에 떠는 中企

  • 동아일보

기촉법 일몰 20여일… 여파 수면위로


“‘기촉법’이 뭔지도 몰랐어요. 이달부터 없어지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신청을 했을 텐데….”

대기업에 10년째 자재를 납품하다 최근 경영난에 몰린 전남의 중소기업 사장 A 씨는 한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달 말로 폐기되면서 이 회사는 채권단 75%의 동의만으로 대출 연장 등 회생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사라졌다.

A 씨는 지원 조건이 훨씬 까다로운 ‘채권단 공동관리’에 따라 지난주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채권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A 씨는 “3개월 뒤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5억 원을 갚지 못하고 공장 문을 닫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국회 파행으로 폐기된 ‘기촉법 일몰’의 여파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에 따른 자금난에 최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까지 겹친 중소기업들이 ‘부도 공포’에 떨고 있다.

○ 기촉법 일몰, 중소기업 직격타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촉법 효력이 사라진 뒤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은 A 씨 회사처럼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 외에 회생 방법이 없다. 다행히 기촉법을 대체해 다음 달부터 기촉법 내용이 상당수 반영된 ‘기업구조조정 운영협약’이 시행된다. 하지만 모든 금융 채권자에게 적용되는 기촉법과 달리 이 운영협약은 협약에 가입한 금융회사에만 효력이 있고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은행 주축인 채권단의 동의를 받아 대출 만기 등을 늦추며 한숨을 돌리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기촉법 일몰로 신속한 자금 수혈이 어렵게 되자 인력을 줄이고 납품업체에 “단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버티는 상황이다. 경기 안성에 있는 대기업 협력사 B사는 부도 직전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법정관리 신청을 못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 ‘부도 낙인’이 찍혀 안 좋은 소문이 나고 재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제2금융권이나 사채권자들에게서 빚을 끌어다 쓰는 중소기업이 많다. 이 중 장기적으로 사업 전망이 좋은 곳들도 기촉법이 없으니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여야, 이달 말 ‘기촉법 부활법’ 발의

이와 달리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은 기촉법 일몰 직전인 지난달 말 ‘턱걸이 신청’을 한 덕에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이 리한의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촉법이 ‘좀비기업’을 연명하게 하고 관치금융의 수단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 격화, 경기 침체, 금리 상승, 최저임금 인상 등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구조조정 수단으로 워크아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정보기술(IT) 대기업 협력사 C사도 재기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초 돈줄이 막힌 C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협력사 10여 곳이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 회사가 법정관리로 갔다면 협력업체까지 줄도산 했을 것”이라며 “워크아웃을 발판으로 어떻게든 회생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는 이제야 기촉법 재입법 논의에 착수했다. 여당과 야당은 각각 이달 말 기촉법을 되살리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일부 의원이 기촉법을 대체할 임시 법안을 마련해 먼저 통과시키자는 제안까지 할 정도로 기촉법 부활에 대한 의지가 크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김성모 기자
#기촉법#대출연장#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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