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朴정부, 구제역 시스템마저도 신뢰할 수 없다”

이혜민 기자 입력 2017-02-16 14:46수정 2017-05-1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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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농가 농장주 3명 격정토로
● 거점소독장이 더 위험할 수 있다
● 가축 반출 제한, 행정권 아닌 생활권으로
● 백신 효능 개선 시급하다
“구제역 백신은 정부가 독점한다. 농식품부(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검역본부(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백신도 공급하고 백신 효과도 검증한다. 정부가 백신 효과에 대해 거짓말해도 농민은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 공신력 있는 해외 기관에서 ‘백신의 효과에 의문이 있다’는 리포트를 받고도 숨기는 검역본부를 어떻게 믿나!”

30년 이상 돼지농장을 운영하는 A씨는 정부를 강하게 불신했다. 그가 언급한 사건은 ‘농림축산식품부의 구제역 백신 자체 감사 결과’로, 2015년 6월 언론에 보도됐다. 2014년 말부터 2015년 4월까지 구제역이 기승을 부린 배경에는 검역본부의 ‘물백신’ 강요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된 것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검역본부는 2014년 9월 영국 퍼브라이트(구제역 세계표준연구소)로부터 ‘한국에서 사용 중인 구제역 O형 백신(O1-Manisa)이 경북 의성군에서 2015년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상관도가 0.14에 불과하다(통상 상관도가 0.3 이상은 돼야 효과 있다고 평가됨)’는 보고서를 받고도 농식품부에 알리지 않았다. 또한 검역본부는 축산 농가가 백신 효능에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문제없다. 접종 방법이 잘못됐다”고 답했고, 구제역 백신 검정 규정(백신의 효과성 인증을 위한 동물실험 실시)도 생략했다. 이 일로 농식품부는 검역본부 실무자 32명에 대해 징계 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이 있었기 때문일까. 매거진 D가 접촉한 축산농가 농장주 3명은 “우리나라의 구제역 관리 시스템 ‘골격’은 대체로 잘 돼 있다”면서도 “정부가 부실하게 운용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꼽은 문제는 ‣거점소독장 안전성 ‣구제역 백신 역학조사 샘플링 적절성 ‣반출제한 타당성 ‣백신 신뢰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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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소독장이 오염원 제공처?


농식품부는 가축방역심의회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2월 9일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구제역 대란이 발생한 2010년 이후 7년 만이다. 이로써 정부는 전국 축산농가 모임 금지, 축산 관련 단체장 선거 연기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소, 돼지 등 가축시장을 18일까지 폐쇄하고, 농장 간의 생축(牲畜, 가축) 이동 금지도 가능하다. 관련 종사자들은 농장 출입을 최소화하고, 부득이 방문하는 경우 농장의 출입을 전후해 1회용 방역복 착용과 소독 등을 철저히 해야 한다(정부는 경계 단계에서도 다음과 같은 수준의 방역조치를 취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280여 곳에 설치된 거점소독장(구제역이나 AI 바이러스가 차량에 묻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길목마다 설치해 놓은 시설)도 여러 방역조치 중 하나다. 정부는 전국 모든 시군 간, 시도 간 거점소독장소를 설치하는 한편 주요 도로에 설치된 통제 초소를 전국의 주요 도로로 확대하고 인력과 장비를 지원한다. 축산차량은 이곳에서 소독을 마치고 ‘소독필증’을 받아야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A씨는 “거점소독장의 소독이 완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거점소독장에 구제역 바이러스에 노출된 차량이 오는 경우 오염원이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독은 물에 소독약을 탄 뒤 분무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소독약은 따뜻한 물과 섞이면 효과가 나타나지만 차가운 물과 섞이면 효과가 급격히 떨어진다. A씨는 “축산 농가 모임을 금지하는 것과 거점소독장으로 가축차량을 집결하는 정책은 상충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원칙적으로는 둘 다 오염원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지만 거점소독장이 제 역할을 못하면 그 자체가 ‘오염원 제공처’가 되기 때문이다.

A씨가 지적한 문제는 KBS 2월 11일 ‘효과 없는 거점소독시설, 구제역 AI 확산 못 막는다’ 보도에도 언급됐다. KBS 취재팀과 거점소독시설 효과 검정 실험을 진행한 송창선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차바퀴에 묻은 분변에 소독제를 가해도 분변 안 바이러스까지 죽이지 못한다”고 밝혔다. 거점소독시설의 안전성에 대해 검역본부 질병관리과 담당자는 “방역 현장에 파견된 전문가들이 철저히 관리하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계획을 세우는 곳이기 때문에 현장의 관리감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제역 백신 역학조사 샘플링 보완해야 한다”

2월 15일 광주 북구 충효동 한우 사육농가에서 수의사와 북구청 방역반원들이 구제역 청정지역인 광주 전남에서 구제역 2차 예방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동아일보)


검역본부는 구제역 발생을 방지하려 예찰(예비관찰)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동안 소는 구제역 노출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돼지에 집중해왔다. 돼지의 경우, 백신을 접종한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1년에 두 번 역학조사를 진행한다. 1년에 2번 백신을 맞은 경우 1년에 4차례 역학조사가 실시되는 것이다.

역학조사는 농가의 규모에 관계없이 돼지 13두를 채혈한 것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돼지에 백신을 맞춘 뒤 혈액을 채취해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성 있는) 항체가 형성됐는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돼 특이 항체가 나타났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채혈은 농민이 아닌 시도 가축방역기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역학조사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영철 정피앤씨연구소 대표(축산학 박사, 축산농가 농장주)는 “샘플링 선정 방식을 보완해 검정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농장의 돼지 13마리만 채혈하지 말고, 각 농장의 규모에 따라 표본 수를 줄이거나 늘리자는 얘기다. 아울러 “채혈을 농장의 A돈사에서만 하지 말고 A돈사, B돈사, C돈사, D돈사 등 여러 곳에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역본부 구제역진단과 담당자는 이러한 의견에 대해 “우리나라 예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로, 지난해만 83만여 건의 채혈이 이뤄졌다”면서 “샘플링 방식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반출 제한, 생활권 단위로 쪼개야 한다”


구제역 확진에 따라 정부는 긴급 방역 조치를 취했다. 그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초동 조치’다. ‘초동방역팀(발생농장 이동통제), 역학조사팀, 중앙기동방역기구를 투입하는 등 긴급 방역조치를 취했고, 발생농장 및 반경 3㎞ 이내 우제류(偶蹄類 ‧ 소, 돼지, 염소 등) 농장(99농가 1만 두)에 대해 이동제한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40년 이상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장주 B씨는 정부의 초동조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가축 반출 제한 조치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구제역 바이러스 확진으로 돼지를 잃는 것보다 구제역 때문에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이 더 두렵다”는 B씨는 “며칠 동안 돼지 출하 등을 제한하는 것은 ‘며칠 동안 숨 쉬지 말고 대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농장주 A씨도 같은 생각이다. “정부가 가축 반출 제한을 하더라도 행정구역이 아닌 생활권, 구제역 확진 발생지와의 거리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연천에서 구제역 확진이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경기도 전역의 돼지가 다른 도(충청도, 강원도 등)로 나갈 수 없게 된다. 충청도와 인접한 경기도 시군에 속한 농가들은 기존에는 충청도 도축장으로 돼지를 보냈지만 더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경기도 전역의 돼지들이 경기도 관내 도축장으로 몰리면서 속도가 더뎌진다. 자연히 돼지 출하(出荷, 내다 파는 행위)가 지연돼 경기도 농장주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출하가 늦춰지면 한 마리에 들어갈 사료값이 늘고, 돼지의 적정 무게가 넘어서 돼지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농식품부 방역총괄과 담당자는 “초동조치를 신속하게 하려면 가축 반출제한 명령은 시군단위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 그 많은 시도를 생활권으로 나눠 분류해 그에 따라 대처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또한 “반출금지 조치 관련 법 자체가 가축전염병을 다른 시군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제19조(격리와 가축사육시설의 폐쇄명령) 2항은 ○제1종가축전염병이 발생하여 전파·확산이 우려되는 경우 가축 또는 오염우려물품에 대해 시·도(시·군) 밖으로 반출 금지 명령 가능 ○명령주체 :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로 명시하고 있다. 농장주 A씨는 정부 관계자의 이 같은 의견에 대해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연천에서 구제역 확진이 나오면 정부가 초기에 해당 농장의 반경 3km 이동을 제한하는 건 맞다. 하지만 연천과 인접한 강원도 철원 농장은 가축 반출을 제한하지 않은 채 연천에서 110km 떨어진 수원 농장에 대해 반출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가.”

“백신 신뢰성 확보가 우선이다”

2월 14일 전북 순창군의 축산과 한 직원이 구제역 백신 보관 냉장고를 점검하고 있다.(동아일보)


매거진 D가 접촉한 축산농가 대표들은 구제역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으로 ‘백신 개선’을 꼽았다. 이들은 “백신의 효과가 뛰어나더라도 구제역을 100% 막을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농민에게 믿을 만한 백신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6월 보도된 ‘물백신’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대 교수도 동아일보 2월 13일자 시론을 통해 ‘백선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현재 통용되는 백신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백신은 10년 전이나 다름없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이는 질병이 다시 발생할 걸 예상하면서도 얼마나 준비가 부실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외국제약사에 의존하는 구제역 백신을 국산화하려 국내에 백신 제조 시설을 건립하기로 한 상태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2월 1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 업무보고에서 “국산 백신 확보를 위해 제조시설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이를 위해 올해 관련 예산 17억 원을 배정하기로 했다. 백신공장 설립은 2011년에도 거론됐지만 우리나라가 구제역 청정국이 되면 공장이 필요 없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공장 건설이 지연돼 왔다.

정영철 정피앤씨연구소 대표는 “우리나라는 구제역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재국(常災國)이 됐다”면서 “구제역 상재국으로서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구제역 백신을 개발하는 데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 구제역 백신의 경우 유효기한이 짧으므로 정부가 인근 지역의 동향을 파악해 외국제약사에 미리 백신을 주문해놔야 한다. 또한 백신 효과를 철저히 검사하고, 농민이 백신을 올바른 방법으로 접종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구제역 상재국이란 점을 인식하고 백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이어가는 것이다.”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구제역#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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