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주성원]일자리의 정치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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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원 산업부 차장
주성원 산업부 차장
 얼마 전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일본지사 임원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일본은 지금 일자리가 넘치고 인력이 모자란다. 한국 청년 구직자를 일본 기업에 취업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구인난이 한국 청년에게 곧바로 기회가 되는지는 좀 더 검증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일자리가 넘친다’는 그 임원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일본의 구인 대 구직 비율은 1.41 대 1. 일자리가 구직자보다 약 40% 많다.

 이런 현상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 효과다. 현재 진행 중인 아베노믹스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평가가 분분하다. 그러나 일자리 수가 늘었다는 것만은 통계로 입증된 사실이다.

 아베 총리는 일자리 성적표를 ‘정치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때 집권 자민당은 “대졸자 취업률이 사상 최고인 97.3%”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당은 선거에서 압승했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고공비행 중이다. 군사 재무장과 역사 문제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가는 것도 지지율이 배경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이 아베 총리에게 힘을 준 셈이다.

 20일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경우가 좀 다르다. 아베 총리가 일자리로 추진력을 얻었다면, 트럼프는 소비 강국인 미국의 ‘힘’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일자리 창출과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FCA), 도요타, GM 등이 트럼프의 ‘트윗 한 방’에 바짝 엎드렸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미국에 5년간 31억 달러(약 3조7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 마윈(馬雲)은 “5년간 미국에 100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약속해 트럼프로부터 “가장 위대한 기업가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일자리 창출은 정치 지도자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렛대’라는 점에서 정책 이상의 문제다. 트럼프는 11일 기자회견에서 일자리(job)란 단어를 17번이나 언급할 정도로 일자리에 집착했다. 정치인에게 일자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다는 뜻이다.

 한국 정치인들이라고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일자리 공약’을 내놓기 시작했다. 재정을 투입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거나, 노동 시간을 준수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어나게 된다거나, 청년 고용 할당제를 도입하겠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근본적인 고민이 담겨 있기보다는 숫자 나열에 급급한 포퓰리즘 공약에 가깝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를 활성화해 민간 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법인세를 올리거나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 정치인의 힘이 되는 것은, 단순히 세금 얼마 더 걷어 공무원 자리 몇 개 더 만들겠다는 약속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지속 가능한 현실이 될 때 비로소 이뤄지는 일이다.

 아베노믹스는 양적 완화를 통한 통화정책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인 뒤 궁극적으로 노동 개혁과 법인세 인하, 제조업 기반 강화 등의 친기업 경제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기업들에 국경세 부과 같은 ‘엄포’를 놓기에 앞서, 현재 35%인 법인세율을 15%까지 줄이겠다는 ‘당근’부터 제시했다. 우리 대선 주자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숙제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
#아베 신조#일본#아베노믹스#일자리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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