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 이후 충청권은 주요 선거에서 확실하게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충청권이 찍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당선될 후보를 충청권이 찍는 것’이라는 논란도 나왔지만 선거에서 충청권이 갖는 위상은 부정하기 어렵다.
1997년 대선 때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이후 충청권에서 이회창 후보보다 41만 표를 더 얻어 40만 표 차이로 신승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충청권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다 25만 표를 더 받아 57만 표 차로 이겼다.
배재대 김욱 교수(한국선거학회장)는 “영호남의 표심이 ‘패권지향적’이라면 충청권의 표심은 ‘실리주의적’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충청권은 선거 당시 지역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투표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독자적인 대권창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충청도민들이 1997년 대선에서 ‘JP라도 정권에 들어가면 지역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한 이후 실리적 투표 성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표심은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내 건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맞물리면서 절정을 이뤘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충청권 투표패턴의 이유를 역사적 지리적 배경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세력을 확장할 때 충청권을 번갈아 장악하는 과정도 충청민의 DNA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경수 씨(58)는 “출신 지역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충청권이 가장 바람직한 투표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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