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2>국제변호사

  • 입력 2006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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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총성이 가득한 지구촌 법률전쟁.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는 필연적으로 기업 간 법률분쟁을 낳는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경쟁을 헤치고 살아남았더라도 법률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장이 기다리고 있다.

‘국제변호사’는 국경을 넘어선 법률전쟁의 전사(戰士)다. 2007년이면 굳게 닫아 놓았던 국내 법률시장도 개방해야 한다.

경제의 세계화와 다국적기업 간 법률분쟁의 증가로 국제변호사는 새롭게 떠오르는 파워그룹에 합류했다.

○ 다국적 법률전쟁의 최전선으로

한국의 수출 기업들은 잇따른 국제 법률분쟁으로 생존의 위기를 느낄 정도다. 한 다국적기업이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수출단가가 3달러인 리모컨에 대해 개당 1달러의 로열티를 내라는 국제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한국 기업을 향한 외국 기업의 법률 공세는 거세다.

이 같은 다국적 법률전쟁에서 한국 기업을 위해 등판하는 구원투수들이 한국계 국제변호사들이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2000년 이후 격렬해지는 법률전쟁에 대비해 미국 유럽의 국제변호사를 긴급 수혈했다.

삼성은 그룹 내 미국 변호사가 73명에 이른다. 삼성은 국내 변호사 중 유일하게 하버드대 로스쿨 강사를 지내고 미국 헤이먼센터의 회사법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한 이현철(38) 변호사를 김&장 로펌에서 스카우트했다.

한 로펌 관계자는 “과거 미국 변호사들은 대형 로펌에서 번역을 하거나 한국 변호사를 돕는 ‘국제 법무사’ 역할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교포인 법무법인 대륙의 이용구(36) 미국 변호사는 최근 2개월 동안 수차례 중동지역에 다녀왔다. 그는 중동의 ‘오일머니’를 노리는 한국 건설업체와 각종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같은 법무법인의 유동환(36) 미국 변호사는 대한생명이 세계적 금융그룹인 JP모건과 3년여의 법정분쟁에서 승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한생명과 JP모건의 분쟁은 1997년 JP모건이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에 판매한 태국 밧화 연계 토털리턴스와프(TRS)라는 파생금융상품이 태국에 몰아닥친 금융위기로 8억 달러의 손실을 입으면서 시작됐다. 이 사건은 한국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국 투자자들은 JP모건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최고 30%가량 보상받는 선에서 합의했으나 유 변호사는 계약위반이 분명하다며 JP모건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7년간의 국제송사 끝에 지난해 JP모건으로부터 손해액의 50% 수준까지 배상받는 판결을 받아냈다. 대한생명은 당초 합의하려던 금액보다 100억 원 이상을 더 받았다.

1992년 미국 철강업계가 포스코 등 국내 4개 철강업체에 대해 덤핑을 이유로 미국 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사건에서도 국제변호사의 활약이 돋보였다. 당시 국내 철강업계 대리인으로 선임된 김석한 미국 변호사와 노훈(법무법인 두우) 미국 변호사 등 미국 로펌의 한국계 변호사들은 트럭 2대 분량의 관련 서류를 제출하며 미국 철강업계와 공방을 벌여 이겼다.

○ 법률자문에서 비즈니스 파트너까지

최근 기업에서는 법률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에 적절히 대처하는 일을 맡는 최고법률책임자(CLO)의 역할이 강조되는 추세다.

과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수준에 그쳤던 기업의 법무 기능을 강화하려면 의사결정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수석법률고문 김미형(金美亨·41) 부사장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여성 CLO. 워런 크리스토퍼 전 미국 국무부 장관에게 발탁돼 미국 대형 로펌에서 일하던 그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법률고문으로 스카우트돼 그룹 내 국제거래에 따른 법률문제를 책임지고 있다. 역시 미국 변호사인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벤처기업도 CLO 영입에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는 신문기자 출신인 이석우(39) 미국 변호사를 CLO로 스카우트했다.

변호사가 단순히 법률 자문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사업 파트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바꿈하기도 한다. 한국 변호사이면서 미국 변호사이기도 한 하종선(河鍾瑄·50) 변호사는 지난해 현대해상화재보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국제변호사:

엄밀히 말해서 ‘국제변호사’란 없다. 한국 변호사와 미국 변호사, 영국 변호사, 일본 변호사 등이 있을 뿐이다. 특히 미국 변호사는 주(州)별로 선발하기 때문에 ‘뉴욕 주 변호사’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 등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국제변호사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국제 비즈니스와 국제금융 등 국제적인 분쟁을 다루는 변호사들이라는 의미다. 예컨대 법무법인 대륙의 유동환(36) 미국 변호사는 한국 기업인 대한생명을 대리해 미국 금융그룹인 JP모건을 상대로 미국 뉴욕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유 변호사처럼 국제적인 분쟁을 다루는 변호사들에 대해 국제변호사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변호사 시장 넓어져

知財權-어학공부 ‘숨은땀’

세계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법률 전사들의 활동 영역과 지역도 넓어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 양쪽의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의 김재영(金宰永·40) 변호사는 최근 국내 한 기업의 합성수지 ABS 생산기술을 이란에 이전하고 현지에 공장을 증설하는 기술 수출 프로젝트의 법률 검토를 맡았다. 그는 이란 현지 법뿐만 아니라 이전 대상 기술의 라이선스계약 검토를 위해 생소한 지적재산권 관련법도 밤을 새워 가며 꼼꼼히 뒤졌다.

국제변호사들은 변화하는 시장을 뒤쫓기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의 수요를 미리 읽기 위해 애써야 한다. 미국에서는 변호사를 유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란 뜻을 지닌 ‘트렌드 세터(trend setter)’ 직업군으로 분류한다.

법무법인 광장의 정태수(鄭泰洙·40) 변호사는 손꼽히는 일본통. 한국 변호사이면서 미국 변호사인 그는 일본 도쿄(東京)에 위치한 다국적 법률회사인 앤더슨 모리에서 근무했다.

러시아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류혜정(柳慧定·36·여·법무법인 지평 소속) 변호사는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과 현지 이해를 바탕으로 법제처에서 주관하는 동북아법제 연구과제 중 러시아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법무법인 청해의 김한칠(金漢七·41) 변호사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러시아 변호사이기도 하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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