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과 비교해본 ‘2005 북핵 위기’

  • 입력 2005년 5월 5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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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위기가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critical juncture)’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재개를 계속 거부한 채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고, 이에 맞서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준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의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 검토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던 1994년과 같은 위기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1994년 1차 북핵위기와 현재의 북핵위기를 비교해본다.

▽더 심각한 위기상황=2005년 5월 현재 북한의 핵 위협은 1994년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북한은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데 이어 이미 8000개의 폐연료봉을 모두 재처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12∼14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셈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했던 1994년 핵위기 당시 미국은 명확한 ‘한계선(red line)’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이 핵 연료봉을 추출하자 미국은 즉각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는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 국방부는 영변 핵시설 폭격에 관한 긴급대책을 마련하라는 당시 윌리엄 페리 장관의 지시에 따라 비밀리에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 준비에 돌입했다.

이와 관련해 존스 홉킨스대 돈 오버도퍼 교수는 저서 ‘두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에서 “미 공군은 정밀공습(surgical strike)을 통해 방사능을 널리 누출시키지 않고도 핵시설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까지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을 한국 정부가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는 점. 당시 한미 관계가 현재에 비해 원만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일방적 대북공습을 검토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柳浩烈) 교수는 “최근 미군 고위관계자에게서 ‘우리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아닌, 이른바 플랜 B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6자회담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렸다”고 말했다.

▽북핵문제가 악화일로를 걷는 이유=북한과 미국의 타협 없는 충돌 때문이다. 미국의 해결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윤덕민(尹德敏)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북한의 핵개발을 막으려고 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레드라인을 명확히 하지 않았고, 해결을 서두르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994년 핵위기의 경우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당시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핵동결’ 의사를 표명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북-미는 그해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 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데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는 북한에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 타협을 하는 대신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안보리로 가는가=서울대 국제대학원 신성호(辛星昊) 교수는 “6자회담 재개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6월을 지나면 6자회담 무용론은 대세가 될 것”이라며 현재의 북핵 국면에 대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의 한 당국자도 “북-미가 기존의 입장을 변경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에서 협상에 의한 타결은 어렵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유엔 안보리 회부 및 제재논의 등으로 인한 긴장 고조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제네바 협상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미 조지타운대 국제대학원 학장은 최근 저서 ‘북핵 위기의 전말(Going Critical)’에서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는 독립적인 대안이라기보다는 북한이 대화로 돌아오도록 하는 압력이며,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마저 무시할 경우 (군사적 행동을 포함한) 좀 더 강압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한 명분의 축적이었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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