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학교폭력 처벌만으론 해결 못해

  • 입력 2005년 4월 29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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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 등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한 다양한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학교경찰제, 폐쇄회로(CC)TV 설치부터 병영 입소 교육까지…. 하지만 단속과 규제로 폭력을 막는 것은 대증(對症)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가해 학생들 또한 마음이 병들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루소의 ‘에밀’(한길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소는 에밀에게 어떤 제재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행동을 책임지게 할 뿐이다. 예컨대, 난폭한 장난으로 유리창을 깼다면 반성하기 전까지는 절대 창문을 고쳐 주지 않는다. 유리가 없어 찬바람이 몰아치는 방에서 지내게 된다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터다. 학생들은 대개 가해(加害)가 가져올 심각성을 잘 모른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알려주는 것은 강력한 처벌보다 폭력 예방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설득의 심리학’(21세기북스)은 보다 구체적 방법을 일러 준다. 인종 대립이 심각했던 1970년대, 미국 심리학자들은 학교 안에서 인종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연구를 했다. 서로 간의 대화는 의외로 반목만 더 키울 뿐이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 속에서 나왔다. 경쟁만 있고 상생은 없는 우리의 교육평가가 학교폭력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언어학적 연구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10대들의 언어는 ‘외계어’에 가깝다. 일진회의 용어들은 또래조차도 모를 정도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이제이북스)은 소수언어일수록 문법과 어휘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반면, 세계어가 될수록 언어는 쉽고 단순해진다.

21세기는 창의력의 시대다. 10대들의 언어는 점점 획일화되는 문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의성의 원천일 수 있다. ‘짱’만 해도 그렇다. 원래 이 말은 청소년들의 은어였지만 지금은 발랄한 어감으로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아이들의 행동은 해석에 따라서 교칙 위반으로도, 다양성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사람은 주변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학교폭력 해결의 실마리는 그네들 문화의 밝은 면을 바라보고 북돋는 일에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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