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사미자 "성우활동 하면서도 늘 연기생활 동경"

입력 2001-11-14 18:20수정 2009-09-1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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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5월9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국어 책이나 소설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혼자 낭독하곤 했다. 평소에는 말이 없었으나 내 속에는 연예인의 끼가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남의 흉내를 잘내 주위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이화여중고를 다니던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려워 등록금을 안 낸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여러 차례 영화배우 모집에 응시했으나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배우가 되기 전 지금의 남편 김관수씨를 만났다. 고교 때 성공회 성당에서 하는 연극에 여자 주연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남자 주인공이 김관수씨였다. 우리는 연습을 함께 하며 친구로서 호감을 느꼈지만 공연을 끝낸 뒤 기약없이 헤어지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 우리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고 1962년 운명처럼 결혼했다. 남편은 KBS 탤런트 1기였고, 나는 동아방송 성우 1기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으니 우리는 당시 보기드믄 ‘연예인 부부’였던 셈이다. 남편은 72년 연예계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나는 성우를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해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잊을 수 없는 작품은 1969년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TBC 드라마 ‘아씨’였다. 이 작품에서 나는 양반집에서 시중을 드는 청지기의 딸로 출연해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1975년에는 TBC ‘임금님의 첫사랑’에서 “안녕하시니꺄?”라는 강화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구사해 장안의 화제가 됐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까지 수백편의 드라마를 출연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적지 않다. 내 인생에 은퇴는 없다는 각오로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 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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