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의 영화이야기]"잘나가는 배우를 잡아라"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13분


정말 캐스팅 전쟁이다. 영화는 영화대로, TV는 TV대로 배우가 없단다.

왜 그럴까? 우선 촬영 기간이 예전보다 길어진 탓이 크다. 2∼3개월이면 끝나는 촬영이 요즘엔 4∼6개월씩 걸린다. 일년에 한 작품 이상 곤란하다. 당연히 ‘배우 회전도’가 낮아졌다.

둘째는 작품마다 특성이 있는데 그 특성을 맞출 연기력 갖춘 배우는 별로 없고 일회성 스타만 많기 때문이다.

캐스팅이 어렵다보니 요즘은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가기 전부터 ‘대충 이런 이야기’라는 정도의 컨셉만 가지고 스타를 찾아가 ‘입도선매’ 하는 지경이 됐다. 최소한의 예의도 사라졌다. 제작자가 다른 영화사의 촬영 현장에 가는 것은 결례임에도, 캐스팅에 몸이 단 A대표는 요즘 어느 배우의 촬영 스케줄을 일일이 꿰고 계속 촬영장을 쫓아다니고 있다.

내가 아는 영화사의 O대표는 평소 유명 배우들과의 친분 관계가 아주 돈독하다. 그런데도 이번달 촬영에 들어갈 영화 캐스팅 때문에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했더니 “친한 거 다 필요 없더라. 막상 계약하려니까 다들 못 하겠대”라고 한탄했다.

O대표가 8개월간 밥먹고, 술마시고, 틈틈이 안부를 챙겨가며 공을 들여온 여배우 L은 아역 시절부터 15년 이상 인연을 맺어왔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이라고 거절했단다. 결국에는 TV에서 활동해 온 ‘충무로 신인’이 캐스팅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나 역시 내년에 만들 멜로영화의 주인공 때문에 고민이다. 내가 원하는 남자 배우는 이미 내년 4, 5월까지 ‘예약’돼 있어 신인을 써야 할 판이다.

하지만 캐스팅의 귀재도 있다. 3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공공의 적’의 강우석 감독이 그렇다. 강감독은 이 영화 주연인 이성재, 설경구의 캐스팅을 단 10분만에 해치워 기를 죽였었다. 배우가 감독을 믿고 출연을 결정한 경우다. 강감독의 ‘캐스팅 능력’에는 현란한 말솜씨도 한몫 했을 것 같다. 배우들은 강감독의 주술적(?)인 설득의 변을 듣다 보면 사고력이 마비돼 저절로 캐스팅에 응하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캐스팅 전법에는 인맥, 과거의 의리, 평소 친분 관계까지 천차만별 접근법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정공법이다. 시나리오와 감독을 무기로 공략하는 방법, 그것이 가장 효과있는 전략이다. 그래서 난 오로지 정공법만 믿고 오늘도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처럼 멋진 시나리오와 감독 찾기에 여념이 없다.

<좋은 영화 대표>greenpapaya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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