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인권연대/명동성당이 져야할 십자가

  • 입력 2001년 2월 19일 14시 44분


지난해 12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한국통신 노조원들
지난해 12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한국통신 노조원들
명동성당이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농성으로 종교기관으로서의 제 기능이 위협당할 지경이라는 푸념이 들리더니 지난해에는 한국통신 노조의 농성을 계기로 그 푸념이 드디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명동성당은 한국통신노조가 철수하자마자 성명을 발표하고, 앞으로는 명동성당에서의 농성을 불허하겠다고 공언하고,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하기도 했다.

발빠른 경찰이 바로 병력을 투입하여 명동성당 입구를 지키게 된 것은 물론이다.

사실 명동성당이 이렇게 다소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나선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7·80년대처럼 '민주-독재'의 선명한 대립구도에서야 명동을 찾는 사람들의 정체가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났으나,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진 지금 상황에서 평소 깊은 관심을 갖고 사회문제를 들여다보지 않는 한 예전처럼 명쾌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비슷비슷한 이익집단의 집단이기주의로도 보일 수 있고,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는조차 알기 어려울 때도 있다.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는 지금도 명동성당에는 끊임없이 농성·시위를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들중에는 수배에 걸려 몇 년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청년들도 있다.

그저 '민주화가 되었다'고 믿는 단순한 시각으로 이들의 몸부림이 이해될 리 없다.

누구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법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도망만 다니냐는 의문이 생길 법하다.

또 하나의 고통은 명동성당의 원래적 기능이 침해된다는데 있다. 웬만한 농성이래야 워낙 일상적이고 참여하는 사람도 얼마되지 않지만, 얼마전의 한국통신처럼 만명 정도가 들이닥치면 그야말로 모든 기능이 온통 마비되어 버린다.

차량은 고사하고 사람도 마음대로 다닐 수 없고,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게 오히려 객으로 온 농성자들에게 출입을 통제당하는 일까지 생긴다.

그들이 남긴 쓰레기며, 오물은 또 얼마나 되는가.

성당을 관리하고 지킬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정말이지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전에 아무런 양해도 심지어 통보마저도 없이 그저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온통 난장을 질러 놓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없이 자기 목적만 달성하고 떠나버리는 사람들에게 거듭 질렸고 이젠 더는 못참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게다.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니 뭐니 해도 그 공간은 기본적으로 명동성당의 신자들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은 명확하게 명동성당의 주인이고, 명동성당은 그들의 책임과 권한아래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통신이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십여개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다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통상 20명이 넘지 않은 인원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야 있을리 없겠지만 농성을 불허한다는 명동성당의 입장에는 배치된 것이었다.

성당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부득이하게 농성을 강행한 이들은 성당의 이해를 요청했고, 이해를 구하지 못하게 되자 천막조차 없이 맨땅에 누워 농성을 했다.

그것도 단식농성을 이 추운 겨울에….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5공시절도 아닌데 볼썽사납게 성당앞에다 늘상 경찰병력을 깔아 놓기도 그렇고.

문제는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는 시절에도 여전히 많은 현안이 우리 사회에 남아있고 또 여전히 유독 '명동성당'이 아니면 그 어느 곳에서도 호소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동성당 측이 인정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서,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명동성당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면 기꺼이 짊어졌으면 한다.

어차피 십자가란 것이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아닌가.

글/인권실천시민연대

(이 글은 인권실천시민연대 소식지 2001년 1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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