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연의 스타이야기]액션스타로 돌아온 아놀드 슈왈츠네거

입력 2000-12-21 18:25수정 2009-09-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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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적어도 1980년대 후반까지. 보수 이데올로기에 취해있던 미국인들은 근육질로만 남은 이 건강한 사내를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이상으론 보지 않았고, 불사신의 이미지를 과잉 섭취한 그는 매번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처럼 굴었다.

날이 갈수록 근육은 더욱 불어났고 풍만해진 근육만큼 아둔함도 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80년대의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어쩔 수 없이 아메리칸 보수 이데올로기의 마스코트다.

◇보디빌더에서 액션스타로

모든 건 근육 때문이었다. 1947년 오스트리아 그라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근육 만들기에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발달된(Perfectly Developed) 몸"을 지닌 그는 어렵지 않게 최고의 보디빌더가 됐고 곧 미스터 유니버스에 등극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오스트리아 참나무"로 불렸던 그에게 할리우드 영화계는 당연히 군침을 흘렸다. 당시 할리우드는 액션영화로 재미를 볼 때였고, 빵빵한 근육에 착한 인상까지 겸비한 그는 액션스타가 되기에 적격인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배역은 고대 그리스신 중에서도 가장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는 헤라클레스. <아놀드슈왈츠의 헤라클레스>(70)에서 주인공 헤라클레스 역을 맡은 그는 그때부터 웃통 벗기의 명수가 되었다. 영화마다 선보인 그의 다부진 체격은 "지구는 내가 책임진다!"는 굳건한 결의처럼 보여 믿음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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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출연한 <코난>(81)은 할리우드 액션스타로서의 진가를 확인시켜준 영화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마술적 판타지로 가득한 이 영화에서 중세 검술사 코난 역을 맡은 그는 "칼을 휘두르기 위해선 몸무게를 더 줄여야 했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이런 악평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흥행 성공을 거둔 이 영화 이후 그의 앞길엔 내리막길이 없었다. 그는 곧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 의해 진짜 사이보그가 됐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SF 영화 역사를 다시 쓴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터미네이터>. 이 영화에서 기계인간 T-800을 연기한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액션 영웅이 되기에 충분했다. "I Will Be Back"이라는 명 대사를 남기며 용광로 속에 몸을 던진 그는 인간보다 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사이보그 이미지의 시작이다.

<터미네이터>(84)와 <터미네이터 2>(91) 사이, 전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데올로기 논쟁이 엷어졌고 국가간의 벽도 허물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 과도기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미국 보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상징물로 남아있었다. 혼자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근육질의 영웅 이미지는 <코만도>(85)에 이어 <레드소냐>(85) <고릴라>(86) <프레데터>(87) <러닝맨>(87) <레드 히트>(88)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한마디로 이미지 복제나 다름없었다. 영화 제목과 스토리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그의 이미지는 항상 천편일률적이다. 아놀드는 영화 속에서 타잔 아니면 람보, 슈퍼맨 혹은 제임스 본드처럼 굴었다. 공식도 정해져 있었다. 악당과 정의의 대결, 정의의 승리. 정의의 힘은 아놀드 슈왈츠네거!

◇코미디 배우로 변신

이렇게 불사신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착취 당하고 있을 무렵 그는 드디어 자신의 영화 노선에 어울리지 않는 곁가지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트윈스>(88) <유치원에 간 사나이>(91) <데이브>(93) <쥬니어>(94) <솔드아웃>(96)까지 이어진 코믹 배우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대니 드 비토와 호흡을 맞춘 <트윈스>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그는 "총을 들지 않아도 할리우드에 돈을 벌어줄 수 있음"을 만천하에 입증했다.

이후 그는 액션과 코미디를 오가는 스테레오 타입의 연기자로 과소비됐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영화는 <터미네이터 2> <트루라이즈> <토탈리콜> <배트맨 앤 로빈> <이레이저> <트윈스> <유치원에 간 사나이> <솔드 아웃> <라스트 액션 히어로> 등 총 9편. 여담이지만 그가 영화 속에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죽인 사람은 3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스타일만 다를 뿐 그는 액션영화에서든 코미디영화에서든 한결같이 미국의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미국은 세계 평화를 책임져줄 나라이며,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며 살기 좋은 동네"라고 은근슬쩍 과시하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만 보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건 아니다. 케네디 가문의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인 그는 선거 때만 되면 공화당 지지연설자로 빠짐 없이 등장했고, 90년대 초엔 대통령 사회체육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TV 앵커 출신의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두 딸(캐서린과 크리스티나)과 두 아들(패트릭, 크리스토퍼)을 거느린 미국 '모범시민'의 전형이다.

그런 그가 2년 전 심장병을 앓고 쓰러졌을 때, 미국인들은 이 사건이 미국과 미국 가정의 몰락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의 마스코트인 그는 역시나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섰다. 수술을 받고 재기에 성공, 2년만에 <엔드 오브 데이즈>로 다시 영화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54세의 노쇠한 육체는 액션연기에 더이상 어울리지 않았고 이 영화는 아놀드 최고의 실패작으로 남았다.

<엔드 오브 데이즈> 이후 1년만에 출연한 신작 <6번째 날>은 그런 의미에서 아놀드의 재기에 액셀러레이터를 달아주느냐, 브레이크가 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영화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영화로 재기의 액셀러레이터를 다는 데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6번째 날>은 전미 박스오피스에서 이렇다할 흥행성적을 거두지 못했으며 평론가들에게도 악평을 들었다.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답게 온갖 SF 고전 걸작들을 복제한 이 영화에 대해 'US 투데이'지의 수잔 우슬로지냐는 "비록 의도된 것은 아니라 해도 아놀드는 자신도 모른 사이, 자신의 옛날 걸작 영화들에 경의를 표하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별로 까다롭지 않은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팬들은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젊은 날의 아놀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6번째 날>에서 액션 스타로 다시 돌아왔고, 재치와 웃음, 건강미를 아우르는 영웅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준다. 이 시대 '마지막 액션 히어로'로 기록될 아놀드 슈왈츠네거. 그는 '여섯 번째 날' 태어난 '신이 만든 최고의 창작품'인지도 모른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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