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홀로서는 美 젊은이들

  • 입력 1997년 5월 31일 20시 13분


미국대학 졸업식은 봄이 무르익는 5월에 열린다. 학부모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졸업식장을 나서는 이들 사회 초년병들의 마음은 화창한 계절처럼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경제가 완전고용 상태에 있는 만큼 한국에서 처럼 취직걱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학공부가 혹독하지만 공부에 찌들어서도 아니다. 앞으로 거의 평생을 갚아 나가야 할 빚더미가 졸업생들에겐 고민거리다. 한국에서는 과거 소팔고 논팔아 자식 대학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대학을 우골탑이라 불렀다. 부모가 학비 용돈까지 다 대주는(물론 자기힘으로 대학을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우리와 달리 미국 대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스스로 학비를 조달한다. ▼ 취업후 학자금 직접 갚아 ▼ 최근 미국대학의 등록금은 해마다 천정부지로 뛰어 올라 접시닦이 같은 아르바이트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명문사립대의 연간 수업료는 3만달러(약 2천7백만원)를 넘는다. 그러나 재정이 튼튼하고 신용이 정착된 미국사회가 돈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그대로 내버려 둘리가 없다. 그래서 만들어 진 것이 학자금 융자제도. 우리나라에도 얼마전 도입이 됐지만 미국에서는 융자대상 학생에 대한 제한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빌려주는 액수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원할 경우 등록금 이외에 생활비까지 융자가 가능하고 적용되는 금리도 우리나라 금리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융자 조건이 좋다 보니까 자립심이 강한 이 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이 제도를 이용해 공부를 한다. 미국대학의 한해 평균등록금을 2만달러로만 계산해도 대학 4년동안 들어가는 돈은 최저 생활비를 포함해 10만달러(약 9천만원)를 가볍게 넘는다. 본인 스스로 평생을 벌면서 갚아 나가야 하는 빚의 최소규모가 이 정도다. 미국처럼 한탕주의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10만달러는 보통 큰 돈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한 대학 졸업생의 경우를 보면 그 빚이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데니스 깁스라는 졸업생은 등록금 10만2천달러와 1년간의 독일 연수시절에 소요된 7천7백달러 등 약 11만달러를 융자받아 명문 존스 홉킨스대에서 공부를 했다. 이번에 졸업을 앞두고 뉴욕시에 취직을 했는데 그의 연봉은 3만달러(약 2천7백만원). 사회 초년병 소득치고는 꽤 높은 수준이다. ▼ 깨끗한 사회의 원동력 ▼ 그러나 월 2천5백달러의 소득 가운데 학자금융자 상환을 위해서 첫달 봉급에서부터 8백달러가 떨어져 나갔다. 세금을 떼고 남은 2천달러의 월수입 가운데 정확하게 40%가 빚을 갚는데 쓰인 것이다. 앞으로 15년을 이처럼 매달 8백달러이상씩 갚아 나가야만 경제생활에서 신용을 지켜나갈 수 있다. 그는 생활비가 부족해 다른 금융기관에서 빚을 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미국의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8세가 되면 부모와 떨어져 독립을 해서 사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생활비는 물론 결혼비용까지 스스로 벌어서 해결한다. 부모가 혼수는 물론 자동차 아파트에다 결혼지참금까지 대주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고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철저하게 자녀들의 독립과정을 곁에서 지켜 보기만 한다. 다 큰 자녀의 학비나 결혼준비 등을 위해 무리하게 목돈을 축적하느라 부정부패를 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부모들이다. 건강하고 깨끗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고통을 불만없이 감수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아닐까. 이규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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