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77>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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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 유방이 패왕을 뒤쫓으려 광무산을 떠날 때 주발은 한군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양하에 이르러 번쾌가 먼저 나가 공을 세우는 바람에 선봉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실쭉해 있던 주발은 번쾌가 군사를 잃고 쫓겨 오자 호기를 만난 듯 제자리를 되찾았다.

주발이 오창을 지키던 군사 1만을 이끌고 기세 좋게 말을 달려나갔으나, 패왕의 강병(强兵)을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역상((력,역)商)과 근흡(근(섭,흡)), 시무(柴武)가 중군 3만을 모두 끌어내 한왕 앞을 겹겹이 막아섰다. 거기다가 번쾌가 다시 중군으로 돌아와 한왕의 수레 곁에 붙어 서자 한왕도 비로소 마음이 좀 놓이는 듯했다.

“큰칼을 울러 메고 가서도 잡지 못하고 되쫓겨온 걸 보니 항씨(項氏) 성을 쓰는 개가 몹시 사나운 모양이구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고르고 있는 번쾌를 보고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번쾌가 옛날 저잣거리에서 개백정을 한 이력을 들먹인 놀림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왕의 여유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곧 함성과 함께 양군이 어우러지는가 싶더니 주발과 그가 이끌고 나간 군사들이 사태 나듯 뭉그러져 쫓겨왔다.

한왕이 놀라 뒤쫓는 초나라 군사를 살펴보았다. 어느새 되돌아온 항양(項襄)의 군사들이 보태져 패왕이 몰고 오는 군사는 전보다 갑절이나 부풀어 있었다. 놀란 한왕이 부장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무엇들 하느냐? 전군을 내어서라도 적의 예기를 꺾어야 한다. 모두 나가 적을 막아라!”

그 소리를 들은 역상과 근흡, 시무 등이 주발의 뒤를 받치듯 앞으로 몰아낸 장졸을 꾸짖어 밀려드는 초군을 막게 했다. 3만이나 되는 한군이 맞받아치니 밀고 들던 초군이 잠시 주춤했다. 번쾌도 다시 기세를 되찾아 큰칼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 바람에 잠시 한(漢) 초(楚) 양군 사이에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한군의 머릿수가 원체 많아 그대로 가면 패왕의 맹렬한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한군 왼편 숲에서 함성이 일더니 한 갈래 군사가 뛰어나와 대뜸 한군의 등 뒤를 돌았다.

“복병이다. 돌아갈 길이 끊겼다!”

한군 후진의 군사들이 그렇게 겁먹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다시 오른쪽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서 솟아오르듯 한 갈래의 군사가 뛰어나와 한군의 등 뒤를 돌았다. 조금 전에 숲 속에서 나타난 군사들과 엇갈리게 도는 것이 꼭 몰이꾼들이 짐승을 모는 것 같았다.

“또다시 초나라 복병이 나왔다. 우리는 사방 적에게 에워싸였다!”

한군 후진에서 그렇게 한층 다급해진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자 초나라 군사들의 날카로운 기세를 더 많은 머릿수로 버텨내던 한군 중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패왕이 그 작은 기미를 놓치지 않고 그곳에서 얽혀 싸우는 모든 군사들의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크게 외쳤다.

“항복하지 않는 놈은 모두 죽여라! 이번에는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마치 다 이긴 싸움을 마무리 짓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러자 그 소리에 홀리기라도 한 듯 초나라 군사들이 전에 없던 기세를 올렸다. 커다란 쐐기처럼 한군 중군을 쪼개고 나가 잠깐 동안에 한군을 두 토막으로 내 놓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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