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11>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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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왕, 아무래도 군사를 물려야겠습니다. 팽성이 위태롭습니다.”

범증이 펄쩍 놀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부(亞父),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정도(定陶)의 적이 물러났다는데 팽성이 위태롭다니?”

패왕이 다시 그렇게 물었으나, 여전히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범증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패왕의 물음을 받았다.

“싸움에 이기고도 그 땅을 내주고 다른 곳으로 물러갔다는 것은 그곳에 더 큰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군이 물러간 곳이 탕현(탕縣)이라면 이는 틀림없이 거기서 한왕의 본진(本陣)과 합쳐 팽성으로 가려 함입니다. 탕현에서 팽성까지는 빠른 말로 한 나절 길, 날랜 군사로 몰아가면 이틀로 넉넉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한왕이 내놓고 펼친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꾀에 속은 듯합니다.”

“하지만 서쪽으로 소성(蕭城)에 우리 군사 1만이 있고 북쪽으로 하읍(下邑)에 또 우리 군사 1만이 있소. 거기다가 소성과 하읍은 모두 벌판에 선 우리 팽성의 외성(外城) 격이라 성벽이 두껍고 높으며 우리 군사들을 도와 싸울 백성들만도 각기 3만이 넘소. 한왕이 아무리 대군을 이끌고 간다 해도 하루아침에 떨어뜨리기는 어려울 것이오. 그리고 팽성은 족숙(族叔)께서 10만 군민(軍民)과 더불어 지키고 있는 서초(西楚)의 도읍이외다. 한왕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에워싼다 해도 보름은 버텨줄 것이오. 그 보름이면 넉넉히 성양을 떨어뜨리고 전횡을 목 벤 뒤에 팽성으로 돌아갈 수가 있소!”

패왕이 그렇게 뻗댔으나 아무래도 해보는 소리 같았다. 범증이 그런 패왕의 마음속을 읽었는지 달래듯 말했다.

“모든 일에는 기세란 것이 있어 언덕을 구르는 바윗덩이처럼 한번 기세가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몰려가는 수가 있습니다. 전횡과 제나라 것들에게 품은 대왕의 노여움을 알지 못하는 바 아니나, 이만 군사를 물려 팽성으로 돌아가야 할 듯합니다. 대왕의 헤아리심이 옳다 해도 팽성에 그리 많은 날이 남아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한왕부터 잡아 천하에 위엄을 떨치신 뒤에 다시 전횡과 제나라를 벌하십시오.”

그러자 패왕도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바로 속을 털어놓았다.

“아부, 실은 과인도 그리할 작정이오. 그런데 그전에 한 가지 아부와 계포 선생께 당부할 일이 있소.”

“그게 무슨 일이십니까?”

“과인은 오늘밤 3만 정병(精兵)을 뽑아 팽성으로 떠날 것이오. 하지만 아부와 계포 선생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남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남으시오. 반드시 성양을 떨어뜨리고 전횡을 사로잡아 제나라를 평정하도록 하시오.”

그 말에 잠시 아연해하던 범증과 계포가 입을 모아 말했다.

“대왕께서는 자중하십시오. 풍문으로 한왕은 거느린 제후와 왕만 해도 일곱 명에 장졸 합쳐 50만이 넘는 대군이라 합니다. 아무리 가려 뽑은 군사라지만 3만으로 어떻게 50만 대군을 이길 수 있습니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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