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VS 백신…‘끝나지 않은 전쟁’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7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질병관리본부 내 국립보건연구원 실험동에서 연구원들이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 의심환자로부터 바이러스 유전자를 추출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7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질병관리본부 내 국립보건연구원 실험동에서 연구원들이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 의심환자로부터 바이러스 유전자를 추출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AI-신종플루 등 전염병 백신 개발 ‘안간힘’

일부 바이러스 유전자 변화로 독성 회복도

《신종 인플루엔자A(H1N1)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와 코로나 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에 이어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바이러스가 활약하는 만큼 이에 대항하는 과학기술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

○ DNA바이러스와 RNA바이러스

2006년 다국적 제약사 머크는 세계 최초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내놓았다. 이 백신은 효모 세포에서 생산한 단백질이다.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사람 세포에 못 들어가게 방해하는 항체를 만들어 낸다. HPV는 DNA바이러스다. 유전정보가 사람처럼 DNA에 담겨 있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 이명규 박사는 “RNA바이러스에 비해 DNA바이러스가 변종이 적어 백신을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변종 발생 빈도가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유전자(DNA, RNA) 합성효소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증식할 때 합성효소의 도움을 받아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여러 개 만들어 낸다(복제).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선영 교수는 “복제 과정에서 실수로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RNA합성효소는 3만분의 1, DNA합성효소는 10억∼100억분의 1”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생긴 돌연변이 가운데 환경에 적응해 살아 남은 것이 바로 변종이 된다.

○ 일본뇌염, 사스, AI 바이러스의 차이

일본뇌염이나 소아마비는 신종 인플루엔자나 AI처럼 RNA바이러스로 감염된다. 하지만 이미 백신이 있어 예방이 가능하다. 같은 RNA바이러스지만 변종을 만드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뇌염과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RNA가 1개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8개다. 서로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만나면 8개의 RNA가 마구 뒤섞이는 것이다. 변종이 나올 확률이 훨씬 높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의 원인인 HIV도 RNA는 1개다. 하지만 아직 백신이 없다. RNA가 1개인 다른 바이러스보다 변종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RNA는 활동력이 뛰어나 다른 바이러스로 잘 튀어 들어간다. HIV는 증식할 때 RNA를 잠시 DNA로 만들었다가 다시 RNA로 바꿔 다른 HIV에 전달한다. 이때 RNA를 DNA로 만드는 합성효소가 보통 RNA합성효소보다 훨씬 실수를 많이해 변종도 많이 생긴다.

○ 진화하는 백신 기술

국내 제약사 녹십자는 화학물질로 바이러스를 죽여 인체에 주입해 면역력을 기르는 전통적인 방식의 백신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변종 바이러스를 모두 이런 방식으로 독성을 낮춰 주사할 순 없는 노릇. 이에 과학자들은 새로운 방식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충남대 수의대 서상희 교수팀은 지난해 AI 바이러스(H5N1)의 핵심 유전자를 기존 독감 바이러스에 넣어 독성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AI 인체 백신을 만들었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팀은 독감과 AI 바이러스를 체온(37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살도록 적응시켜 인체에 접종하는 생백신을 만들고 있다. 이들 기술로 두 연구팀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백신도 개발 중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대항도 만만치 않다. 2000년대 초 소아마비 백신으로 사용하던 일부 약독화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화를 통해 독성을 회복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백신을 맞아 오히려 병에 걸릴 위험도 생긴 것이다. 경희대 생물학과 정용석 교수는 “일본뇌염 바이러스의 진화 메커니즘을 분석해 독성을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확률을 계산한 다음 그에 따라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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