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선뜻 내민 도움의 손길들이 있어 ‘살 만한 세상’이라고 위안 받을 수 있었다.
2007년이 저물기 전 한 해를 따뜻하게 했던 기부자들을 다시 만났다.
▽돈보다 귀한 행복=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일식집에서 만난 배정철(46) 씨는 “요즘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15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배 씨는 얼굴 기형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1999년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후 매년 액수를 늘려 올해는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더 많이 베풀려다 보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아이들 수술비도 그렇고, 장애인 재활시설과 어르신들 요양원에 쌀도 보내 줘야 하고…. 그만큼 많이 벌어야 하니까 쉴 틈이 없죠”라고 말했다.
가게 일을 돕고 있는 부인 김선미(41) 씨가 “매일 오후 11시까지 일만 하는데 몸 생각도 좀 하라”며 걱정할 정도다.
그는 “기부 소식이 알려지면서 무턱대고 손을 벌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남보다 피붙이가 못하냐며 친척들이 섭섭한 속내를 비칠 때는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만족합니다. 가끔 시설에 계신 분들을 초대해서 초밥을 대접하는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데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또 한 사람. 심상철(70) 할아버지.
“어차피 죽을 때 아무것도 못 가져가는데 뭐.” 종로의 한 대학원 기숙사에서 만난 심 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고희(古稀)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심 씨는 지난해 모교에 10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올해도 2억 원을 내놓았다.
“20억 원짜리 종신보험을 들었는데 그중 10억 원을 기부하고 나머지 10억 원은 자식들 다섯에게 2억 원씩 나눠 줬어요. 그런데 큰아들은 그 돈이 필요 없다네. 그래서 2억 원을 다시 기부했지.”
심 씨는 “기부 사실을 알리는 이유는 기부문화가 번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인데 아들부터 내 뜻을 따라 주니 고맙다”고 말했다.
▽지나친 관심은 부담=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해 국민훈장까지 받았던 송부금(68) 할머니는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송 씨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 자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민망하다”고 말했다.
송 씨는 올해 초 복지재단에 20억 원을 쾌척한 데 이어 연탄은행에 3억 원을 보내 주위를 따뜻하게 했다.
연탄은행 허기복 목사는 “할머니가 5월에 갑상샘암 수술을 받으셔서 몸조심을 하고 계시다”며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다”고 말했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이면서도 지원금을 꼬박꼬박 모아 전 재산 1000만 원을 기부한 박영자(87) 할머니도 기부 사실이 전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에 시달린 듯했다.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사는 “할머니가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며 거금을 선뜻 내 주시고 굉장히 행복해하셨지만 동시에 마음고생도 하셨다”며 “동네 다른 이웃들에게 공연히 피해가 될까 봐 눈치도 보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2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건국대병원 심장전문의 송명근(56) 교수 부부 역시 “기부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얼굴 없는 선행=남대문시장에서 ‘기부 할아버지’로 통하는 이남림(61) 씨는 지난해 불치병을 앓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방송국 모금 프로그램에 30억 원을 덜컥 내놓더니 올해 초에도 30억 원을 또 기부했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끝내 거부했다. 이 씨가 운영하는 안경점에서 만난 아들 재한(35) 씨는 “언론사는 물론이고 고맙다고 찾아오는 분들도 안 만난다”고 전했다.
400억 원대의 부동산을 고려대병원에 기부했던 60대 여성도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어 여전히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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