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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손톱밑 가시’를 뽑자]<5> 어린이집 의무교육만 15개

입력 2013-01-17 03:00업데이트 2013-01-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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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기저귀 찬 아이에게 웬 재난대처훈련?”
“보육교사 등 의무교육 15개… 평가 반영되니 다 채워야”
“지난해 각종 교육을 받느라 스무 번도 넘게 어린이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서울시, 각종 협회…. 오라는 데도 많습니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게 먼저인지, 교육받는 게 우선인지 묻고 싶어요.”

서울 강북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16일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도 교육은 필요하지 않나’라고 묻자 “식품위생이나 교통안전 교육처럼 매년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교육이 너무 많다’는 건 모든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이 호소하는 고충이다. 원장들은 “우리가 교육을 게을리 하거나 받지 않으려는 것처럼 들릴까 걱정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 “국회에서 법 만들 때마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받아야 하는 교육도,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에게 해야 하는 교육도 많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나 사고가 생길 때마다 국회에서 내놓는 대책 법안 한구석에 으레 ‘어린이집에서 이런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교육이 많아졌다. 이런저런 지침에 따라 의무가 된 교육도 적지 않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 우림어린이집 김애리 원장은 “받아야 할 교육이 너무 많아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실이 파악한 어린이집 의무교육은 15가지에 연간 125시간이나 된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지만 어린이집으로선 ‘사실상 의무’인 것들도 많다.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하거나 교육 이수증을 제출하면 어린이집 평가 때 가점을 주는 것들이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날이 한정돼 있고 교육장소가 먼 것도 불만 요인이다. 하루짜리가 아니라 여러 날 이어질 때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 대체 교사를 구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나머지 교사들이 빈자리를 메우곤 하지만 돌봐야 할 원생들이 적지 않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옴부즈만실에 따르면 어린이집 급식 책임자는 식품위생관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조리사와 영양사는 이와 별도로 해당 분야 교육을 받는다. 각각 한국식품산업협회와 한국조리사회중앙회가 교육을 담당한다. 교육비는 어린이집 몫이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각종 협회가 어린이집을 ‘먹을거리’로 여기고 국회에 로비해 이런 규정을 만드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 “대체교사 없는데… 교육받느라 수시로 비워” ▼

○ “소방교육 10분씩 한 달에 18번 해야”


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문제다. 어린이집은 매달 3시간씩 아이들에게 소방 교육을 해야 한다.

16일 우림어린이집 7세 반인 해맑은반과 해누리반에서는 화재 예방 교육을 하고 있었다. 동영상과 곰 인형, 종이팻말을 사용해 최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지만 10여 분이 지나자 30여 명의 아이들 중 상당수는 지겨운 듯 몸을 비틀거나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정재은 주임교사(39)는 “아이들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10분씩 끊어 교육해야 한다”며 “3시간짜리 교육이라면 한 달에 18번을 해야 채울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재작년에는 한 영아(0∼2세) 전담 어린이집이 재난 대비 훈련 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자체의 지적을 받았다”며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기저귀를 찬 아이가 매뉴얼대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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