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산업]김지룡/지적 엔터테인먼트

  • 입력 2002년 10월 10일 18시 02분


‘지적 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일까.

요즘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솔로몬의 선택’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받은 느낌이다. ‘지적 유희’란 말도 있지만 왠지 지식인들의 고리타분하고 현학적인 취미를 연상시키므로 ‘지적 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조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TV에서 지식을 소재로 삼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큐멘터리나 특강 같은 프로그램도 지식을 다룬다. 하지만 지적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이전의 지식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지식과 지적 자극을 심각하지 않게, 나아가 아주 가볍게 다룬다는 것이다. 소재는 지식이지만 내용은 엔터테인먼트다.

‘솔로몬의 선택’은 ‘법’을 다루고 있다. 물론 라디오나 TV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생활법률상담’ 같은 코너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상담’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장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법률 조언을 구하는 절박한 내용들이다. 반면 ‘솔로몬의 선택’은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나기 힘든 법률 사건을 주로 다룬다. 절박한 내용이 아니므로 가볍게 희화적으로 다룰 수 있고, 자신의 일이 아니므로 순수하게 지적 자극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지적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등장은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TV 앞에서 지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콘텐츠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 ‘대박’이 터질 듯 한 데 좀처럼 터지지 않는 ‘에듀테인먼트’나 ‘인포테인먼트’를 대체할 새로운 조류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에듀테인먼트는 교육 과정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자는 취지의 것이다. 교육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목적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인포테인먼트도 전달하려는 정보 자체가 목적성을 띠고 있다. 게임 정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심야에 방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목적성은 시장을 쉽게 만든다는 강점도 있지만, 시장의 크기를 제한한다는 약점도 있다. 반면 ‘지적 엔터테인먼트’는 목적성이 없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알면 기뻐하는 어린아이의 호기심 같은 것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지적 엔터테인먼트’는 출판의 영역이었다. 상식시험에도 나오지 않을 잡식을 다룬 책들이 대박은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팔렸다. ‘지적 엔터테인먼트’의 TV 나들이를 계기로 새로운 조류가 올 수도 있다. TV는 가장 영향력이 강한 매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아무 목적 없이 지식을 얻는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면 ‘지적 엔터테인먼트’가 거대한 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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