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이미 4월 10억 달러(약 1100억 원)어치 이상의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관여하고 나선 것은 분할·합병 과정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엇이 제안한 합병안은 현대차그룹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기업의 미래보다는 주가 시세차익을 우선하는 ‘먹튀’ 자본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지배구조를 개편할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3% 투자자’로서 도를 넘은 경영권 개입이다. 현대차는 “특정 투자자와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금지한 자본시장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엘리엇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이대로 상황이 마무리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엘리엇의 사냥감에는 기업과 정부가 따로 없다.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며 합병에 반대해 삼성의 경영권을 흔들었다. 두 회사가 합병된 뒤 올 7월에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8000억 원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수단을 가리지도 않는다. 지난달 14일 현대차에 보낸 엘리엇의 요구 서한이 알려진 것은 블룸버그통신 보도 때문이다. 유출돼선 안 될 비즈니스 서한을 공개해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를 정상으로 볼 수는 없다.
엘리엇을 비롯한 해외 투기자본의 횡포는 한국 자본시장의 제도적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재계는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주장했지만 번번이 외면당했다. 오히려 정부는 집중투표제 등 소액주주의 경영권 개입을 손쉽게 하는 쪽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제도를 손봐야 한다. 우리 기업이 약탈적 투기자본의 희생양이 되는 모습을 매번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