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실련, 반성하라

  • 입력 2001년 1월 4일 19시 02분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지난해 10월 정부투자기관 13곳에 기관장 판공비 집행관련 자료의 정보공개를 청구한 데 이어 11월에는 그중 5곳의 공기업에 후원의 밤 행사 재정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12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마디로 경실련의 행태는 사회정의와 도덕성 구현이라는 시민단체의 이미지와 동떨어진 것이다.

우선 경실련의 정보공개 요구와 후원금 요청의 시기를 볼 때 후원금 확보 압력의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경실련은 “후원금 요청은 후원의 밤 행사가 가까워져 평소 후원했던 공기업에 연락했던 것뿐이고, 판공비내용 공개 요구는 지난해 7, 8월부터 시작한 일이라 두 가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앞둔 공기업이 영향력있는 시민단체의 후원요청을 무시하기도 힘들었으리란 점에서 경실련의 행위는 잘못됐다.

경실련은 지난해 낙선운동과정에서 ‘정부 돈을 받으면서 무슨 자격으로’라는 비판이 일자 정부 돈을 받지 않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했다. 한편으로는 정부 돈을 받지 않는다면서 공기업에 손을 내미는 것은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공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걷겠다는 것은 예산을 전용하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라는 공기업측의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안타까운 일은 경실련이 공기업 돈을 받은 일이 공개됐음에도 그에 대한 반성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도덕적 불감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판공비 정보공개요구부서와 후원금요청부서는 별개이며, 판공비내용 공개와 후원금 요청이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이석연(李石淵)사무총장의 발언에 이어 경실련은 공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관행으로 여기는 듯한 주장도 했다. 경실련은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키자 앞으로는 공기업으로부터는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뒤늦게나마 반성하는 모습은 다행이지만 보다 처절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했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재정적 어려움은 이해한다. 하지만 회원의 회비, 자발적 후원회의 모금, 서적판매, 순수 프로젝트수입 등으로 한 점 의혹 없이 살림을 꾸려가도록 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생명이 바로 도덕성, 자율성,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민단체의 여러 성공적 활동을 기억한다.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번 경실련 사건을 계기로 시민단체는 철저한 자기점검과 재정비에 나서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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