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사태’ 이후 … 셀프세제 만드는 ‘노케미족’ 증가

  • 입력 2016년 5월 20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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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식기는 베이킹 소다·식초로 지우고 … 세탁은 과탄산소다 활용해 ‘빨래 끝’

외국계 헬스케어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 씨(27·여)는 최근 퇴근 후 천연세제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옥시 사태’ 이후로 공산품으로 나온 생활용품을 믿을 수 없게 됐다”며 “걱정하고 살 바에야 차라리 내가 만드는 게 낫겠다 싶어 천연세제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표백제·제습제·방향제처럼 화학성분이 들어간 생활용품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심지어 친환경 마크가 붙어도 ‘믿을 수가 없다’며 스스로 제품을 제조하는 ‘노 케미’(No Chemical)족도 늘고 있다. 가령 가습기를 청소할 때 가습기살균제를 쓰는 대신 베이킹소다나 구연산을 물통 안에 넣고 헹궈내는 식이다.

이같은 현상은 전반적인 화학 생활용품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불신이 커지며 불거졌다. 전문지식 없이 어떤 화학제품이 위험한지 알 수 없으니 아예 안 쓰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향후 2년간 생활용품에 쓰이는 모든 화학물질의 인체 유해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지만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다양한 합성세제는 적은 양을 쓰더라도 피부 속으로 조금씩 침투하므로 매일 사용하면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나마 주방용 세제나 세탁세제는 중성 내지 약알칼리성인 제품이 많아 자극이 덜한 편이다.

반면 화장실 청소용 및 배수구 청소용 세제는 산성 성분이 강하다. ‘한 번에 찌든 때가 쫙 빠진다’는 세제류는 그만큼 강한 산성 물질을 모아 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일본에서는 한 주부가 욕실세제를 잘못 사용하다 질식해 쓰러진 사례가 있다. 염소계와 산소계 표백제 섞어 화장실 소독한 게 원인이었다. 표백제는 염소계와 산소계로 나뉘는데 이를 섞어 쓰면 유독한 염소가스가 발생한다. 염소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 가라앉으므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잘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같은 내용을 모르는 일반인이 다수이기 때문에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천연재료로 만드는 ‘셀프 세제’에는 베이킹소다, 구연산, 과탄산소다(Sodium carbonate Peroxyhydrate, 2Na₂CO₃·3H₂O₂), 식초, 소금물 등 주방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면 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재료는 ‘베이킹소다’다. 제빵 시 사용되는 베이킹소다는 약알칼리성으로 물과 반응할 때 맺히는 결정의 요철이 때를 빼내는 작용을 한다. 먼지, 기름때, 불쾌한 냄새 제거 등에 유용하게 쓰인다. 세척 효과가 뛰어나 과일에 남아 있는 농약 성분을 깨끗이 씻어내는 데에도 쓰인다. 세탁에도 활용할 수 있다. 베이킹소다를 쓰면 옥시레킷벤키저의 대표 제품인 ‘옥시크린’ 못지 않은 표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구연산은 레몬·사과 등 신 과일에 많이 들어 있다. 당밀을 발효시켜 얻은 천연 성분으로 주로 식품첨가제로 쓰이지만 산성이라 얼룩을 지우는 데 좋다. 주로 물 때, 얼룩 등을 제거한다.

과탄산소다는 수용액에서 쉽게 탄산소다와 과산화수소로 해리한다. 찬물에 반응하지 않고 뜨거운 물에서 거품이 생겨 산소계 표백제 구실을 하므로 뜨거운 물에 미리 녹였다가 쓰는 게 좋다. 단백질 분해 효과가 뛰어나 절대 복용해서는 안 된다. 베이킹소다나 구연산은 식품이나 주방용품에 쓸 수 있지만, 과탄산소다는 입에 닿는 식기에는 쓰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의 호흡기에 해를 주지 않는 거품을 만들어내고, 냄새가 없으며, 물에 잘 녹아 세탁세제로 쓸 만하다.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울 때 과탄산소다를 뿌리고, 그 위에 주방세제와 뜨거운 물을 조금 붓는다.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고 10분 정도 방치한 뒤 살살 문지르고 헹궈낸다. 손빨래를 할 때 뜨거운 물에 과탄산소다를 녹인 뒤 변색된 옷을 넣고 빨면 하얗게 변한다.

세탁물의 이염(移染)을 막으려면 소금물에 빨래감을 20~30분 정도 담갔다 빨면 된다. 소금물은 염료가 물에 녹는 것을 방지한다. 흰 옷과 색깔옷을 더 선명하게 해주는 표백제 효과도 낸다.
세탁조를 청소할 때는 구연산,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를 1대1대4로 넣고 세탁기를 10~15분 정도 돌린 뒤 물이 가득한 상태로 2~3시간 두었다가 세탁기를 돌려 마무리한다.

청소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 또다른 천연재료는 ‘식초’다. 물때를 빼주고, 세균번식을 억제해 악취를 중화시키며, 바퀴벌레·개미 등 해충 침입까지 막는다. 특히 부엌 청소에서 빛을 발한다. 식초로 싱크대 청소를 하면 소독 효과는 물론 윤기까지 난다.

물때가 낀 주전자, 까맣게 탄 스테인리스 냄비, 도마나 행주 등을 원래대로 돌릴 정도로 세정력이 강하다. 주전자에 식초물을 담아 하룻밤 둔 뒤 헹구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물때까지 빠져 있다. 도마나 행주는 식초물로 헹궈주는 것만으로도 살균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스테인리스 냄비는 식초물을 담아 팔팔 끓여준 뒤 설겆이하면 타버린 자국이 말끔히 씻겨나간다.

욕실의 곰팡이는 레몬 껍질로 닦아주면 된다. 타일의 찌든 때는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뿌린 뒤 1시간 동안 기다리면 말끔해진다. 변기는 콜라를 하루 전날 밤에 부었다가 아침에 물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깨끗해진다.

쓰고 남은 천연세제는 산소와 만나지 않도록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된 밀폐용기에 밀봉해서 실온에 보관하면 된다. 특히 구연산 등 산성 물질은 금속 용기에 보관하면 안 된다. 구연산을 물에 타서 분무기에 넣고 뿌릴 때는 2~3일 안에 다 쓰는 게 좋다.

글/취재 = 동아닷컴 라이프섹션 정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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