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웨딩이 더이상 ‘작은 결혼식’이 아닌 이유

  • 입력 2016년 4월 15일 1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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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옵션으로 일반예식 못잖은 비용 뽑아내는 행태 늘어
추억 만들고 싶은 예비부부 vs 체면 차려야 한다는 부모세대 갈등 무시 못해


“말이 좋아 스몰웨딩이지, 왜 결국 예식장으로 가는지 알겠더라고요.”

간호사 김모 씨(29·여)의 꿈의 결혼식은 ‘웨딩 파티’였다. 획일적으로 스튜디오에서 신랑신부 얼굴만 바뀌는 사진을 찍기도 싫었고,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식당으로 직행하는 하객들을 많이 부르기보다 정말 나를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만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소중한 사람들과 웃고 즐기는 ‘기억에 남는 파티’를 준비하고 싶었지만 결국 좌절하고 ‘스·드·메’(사진 촬영용 스튜디오, 드레스숍, 메이크업숍) 패키지를 알아보고 있다.

젊은층의 결혼문화로 ‘스몰웨딩’ 등 작은 결혼식이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이효리·이상순, 원빈·이나영, 구혜선·안재현 등 연예인 커플들이 소규모 웨딩을 치루거나 결심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원빈 부부는 결혼식 비용에 총 110만원을 들여 ‘진정한’ 스몰웨딩을 선보였다.

젊은층의 라이프스타일이 실용성·체험에서 오는 즐거움, 여유 등을 중시하는 ‘킨포크’(Kinfolk,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의미) 행태를 보이며 수요가 높아지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당장 결혼 자체를 결심하기조차 버거운 삼포세대에게 부모세대가 원하는 ‘성대한 결혼식’ 자체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 부부가 탄생하기 위한 1인당 결혼식 평균 비용은 5198만원(2013년 한국소비자원)이다. 심지어 주택마련 비용을 제외한 비용이다.

본식을 위한 음식, 웨딩드레스, 수트, 꽃장식, 폐백음식에 결혼식을 화려하게 장식하도록 유도하는 ‘당일 옵션’까지 예식 비용은 물흐르듯 술술 빠져나간다. 젊은 부부들은 1시간 안에 순식간에 끝날 결혼식에 거액의 비용이 아까운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어르신의 주문과 타인의 시선에 밀려 기존의 결혼식 관행 대열에 휩쓸리게 된다.
지난해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기혼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다시 결혼하면 예식 비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답할 정도로 작은 결혼식을 꿈꾸는 부부가 늘고 있다.

예비부부가 원하는 스몰웨딩은 ‘결혼식의 본질적 의미에 충실하려는 것’이다. 신랑신부가 하나 됨을 진정으로 축하해줄 가족과 소수의 지인들에게만 집중하며 추억을 쌓기 위한 ‘파티’를 꿈꾼다. 하지만 대개 로망으로 끝나는 것은 결국 ‘돈문제’와 ‘어른 문제’ 탓이 크다.

‘트렌드’가 되면 돈이 된다. 검소한 취지로 등장한 스몰웨딩의 수요가 높아지자 업계는 이를 위한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면서 의미가 변질되는 부분도 있다. 스몰웨딩은 하객수만 적을 뿐 정해놓은 예산을 훌쩍 넘겨 진행되기 십상이다. 김 씨 예비부부는 식대를 포함해 예식비용 예산을 500만원으로 잡았지만 ‘택도(어림) 없는 비용’이라는 것만 체감했다.

서울 시내에 집처럼 꾸며 놓은 소규모 예식장들은 식대에만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요구했다. 여기에 ‘부부만을 위한 특별한’ 생화장식에 200만~300만원, 대관료 등 다양한 옵션을 필수로 추가해야 했다. 결국 식대 4만원 선의 일반 예식장에 하객을 300명을 초대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김 씨는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작은결혼식이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아주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많은 사람 초청해 축의금을 많이 받는 기존 결혼식 방식이 이득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웨딩 실무자들도 스몰웨딩을 고려하다가 결국 일반 웨딩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장은경 디자인웨딩 본부장은 “작은 규모의 예식을 원하는 부부는 조촐한 하객으로 프라이빗할 것, 비용이 저렴할 것, 예식을 파티처럼 즐기기 위해 시간제약이 없을 것을 목표로 한다”며 “하지만 실제로 시간제약 없이, 저렴하게, 하객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는 결혼식을 진행하려면 비용이 만만찮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기 십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객 인원이 줄어들면 웨딩업체들은 식대나 꽃장식 가격을 일반 결혼식보다 높게 책정해 장소 임대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도록 요구하기 마련”이라며 “스몰웨딩 시장을 노린 유명 호텔들도 회의공간을 예식장으로 개조해 비싼 대관료를 받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거품을 걷겠다며 부부가 모든 과정을 직접 준비하는 ‘셀프웨딩’을 선택하는 예비부부는 드물다. 현실적으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을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50만원 스드메’ 등을 내놓은 초저가 웨딩상품의 경우 드레스나 스튜디오, 메이크업을 준비하는 업체를 알려주지 않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평도 적잖다.

장 본부장은 “공원 등 시민에게 개방하는 공간을 빌리더라도 예식에 쓰이는 혼수도구, 집기, 장비, 케이터링 등 전문가를 직접 섭외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전문가 일당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로 스몰웨딩을 준비하며 양가 어르신들의 의견까지 반영해 하나하나 결혼을 준비하다 시간, 육체·정신적 피곤함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스몰웨딩의 또다른 관문은 ‘부모님’의 허락이다. 맘에 드는 예식을 준비했더라도 부모님의 반대가 시작되면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

한국 결혼식 문화는 결혼 자체를 당사자인 예비부부만의 일이 아닌 가족과 가문의 의례로 중시하는 풍토에서 비롯됐다. 결혼식이 서로의 친분을 확인하는 ‘사회생활’의 장이 되고, 축의금이 일종의 품앗이로 치부되다보니 신랑신부가 꿈꾸는 결혼식은 ‘아웃’된다. 예비부부가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준비를 하더라도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결혼식은 부모님을 위한 행사’라는 인식 탓이 크다.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혼’을 가장 중요한 의례로 여기는데, 스스로 체감하고 경험할 수 있는 의례가 ‘결혼’이 유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부모들은 자식 결혼까지 자신의 역할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만큼 ‘제대로 된’ 결혼을 해야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진모 씨(30·여) 커플도 예단예물 없는 검소한 예식을 원했지만 시댁의 반대로 무산됐다. 처음에는 너희끼리 잘 살라고 말했지만 시모가 결국 “남들은 결혼 전 며느리 덕을 좀 본다는데, 나는 자랑할 게 하나도 없어서 어떡하느냐”며 서운해했기 때문이다. 신랑은 마음이 약해져 “우리 엄마가 저렇게 원하는데 일반 예식으로 돌리자”고 진 씨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진 씨는 뒤늦게 예식장을 알아보고, ‘예단 3총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는 “시댁은 뿌린 축의금을 돌려받아야 하고 혼수, 예단 등 체면을 포기할 수 없다고 스몰웨딩을 반대했다”며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결국 결혼준비로 빚을 지는 것은 우리 부부인데 누굴 위한 결혼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남편을 사랑하니 양보하고 시어머니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지만 집, 혼수 모든 것을 절반씩 부담하는 반반결혼을 하는 상황에서 ‘전통과 체면’을 운운하는 시댁 위주로만 챙기다보니 ‘그럼 우리 부모님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서 검소하고 작은 결혼식이 성공하려면 ‘부모 교육’이 절실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자녀 결혼식 비용을 줄이면 오히려 노후자금까지 지킬 수 있는 등 허례허식을 버리고 ‘실속’을 챙기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장은경 본부장도 “예비부부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부모님이 자신들의 결혼식에 너무 깊숙하게 개입해 간섭하는 점”이라며 “행복해야 할 결혼 준비 과정이 정서적으로 힘들게 되면서 결국 파국을 맞는 경우도 적잖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결혼식 비용이 적게 든 결혼일수록 이혼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경제학자인 휴고 미알론과 앤드루 프랜시스 미국 에머리대 교수는 ‘결혼비용과 결혼지속 기간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결혼비용을 많이 들일수록 상대를 더 사랑한다거나 성공적인 결혼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꼭 고액을 지출하는 결혼이 긍정적인 결혼생활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객수만 적다고 ‘작은 결혼식’은 아닐 것이다. 국내서 이뤄지는 기이한 형태의 ‘스몰웨딩’은 어느새 또다른 보여주기식 결혼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타파하려면 예비부부의 의견일치, 부모세대의 수용, 합리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장소, 예비부부가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결혼식 등이 박자를 맞춰야 진정한 의미의 스몰웨딩이 이뤄질 수 있다.

글/취재 = 동아닷컴 라이프섹션 정희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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