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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바닥에 짓눌려 분노에 몸부림 치는 군상들

입력 2018-10-19 03:00업데이트 2019-02-1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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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싸우는 화가’ 정복수 개인전
인간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겠다고 말하는 정복수 작가가 올해 새롭게 발표한 그림 ‘외로운 십자가’. 갤러리세인 제공
1979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청년작가회관.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화가는 전시장 벽이 아닌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고깃덩어리처럼 사지 없이 고함치는 몸 그림은 관람객 발에 짓밟히는 신세가 됐다. 작가 정복수(61·사진)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첫 개인전, ‘바닥화―밟아주세요’였다. 어느덧 손꼽히는 중견 작가가 된 그가 최근 서울 강남구 갤러리세인에서 29번째 개인전 ‘몸의 극장’을 열었다.

정 작가의 그림은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은 불편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전시도 장기가 훤히 보이는 신체를 그린 작품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생각에 팔다리도 종종 생략한다. 예쁜 그림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무섭다’ ‘징그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하지만 평단이나 후배 예술가들은 그를 주저 없이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부른다.

정 작가가 이런 무시무시한 그림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화가는 그림과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보기 싫은 것, 미운 것은 안 보이게 치워 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림과 싸우는’ 작가는 그것을 정면으로 보고 낱낱이 기록해야 한단다. 신체에 그려진 반점들은 ‘살아가면서 맺힌 응어리’로 설명한다. 그 응어리가 어떤 순서로 생겼는지 번호까지 매기며 작가는 포장하려는 욕구와 끊임없이 싸운다.

젊은 시절부터 그려온 바닥화 역시 같은 궤적에서 풀이할 수 있다. 정 작가는 “서양미술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남을 따라가지 말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로 했다. 천장화가 신을, 벽에 걸린 그림이 권력자를 향한다면 바닥은 삶의 처절한 분노와 아픔이 담긴 현실 세계다.

1999년 작품 ‘명상’. 갤러리세인 제공
어떤 장식도 없이 표현한 거친 현실적 화풍은 세상에 대한 비관이 담긴 걸까. 하지만 작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서양미술은 전통적으로 신만 완전하다고 봤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인간도 완전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정 작가는 한 가지 소재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 왔다. 2014년에는 바닥화를 벽과 설치로 확장해 ‘뼈 속 풍경’전을 선보였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가출한 화가’전에선 갤러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림을 그리는 기행(?)도 일삼았다. 작가는 “작품의 세계와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은데, 할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최근 ‘신자연주의’ 미학에도 참여했다. 1993년 처음 국내 미술계에 등장한 신자연주의는 경계가 무너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몸 자체가 중심이 된다는 이론. 지난해 11월 가나인 작가와 ‘신자연주의―두 몸의 만남’에서 이런 흐름을 선보인 것이다.

정 작가는 “나의 작업은 몸의 자연주의다. 서양에서 인간의 생각과 상상은 현실이 아니라 괴상망측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나는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26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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