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만 가고 속도 들쑥날쑥”…치매 전단계 운전자 공통점[노화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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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가 563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고령 운전자 사고 문제가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6일 경남 밀양에서는 70대 운전자가 스포츠센터 건물 유리창을 뚫고 지하 실내 수영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성 운전자는 “사고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페달 오조작, 차량 결함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 다행히 운전자와 수영장에 있던 50대 여성 등 2명만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과 인지 기능 저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이런 가운데 일상적인 운전 습관 변화만으로도 초기 인지 저하 신호를 포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미국 플로리다애틀랜틱대학교(FAU) 연구진은 고령 운전자 차량에 센서를 설치해 실제 운전 습관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 경도인지장애(MCI)나 경도인지장애 전 단계(pre-MCI)에서 특징적인 운전 패턴 변화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도인지장애는 정상적인 노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로, 일부는 이후 치매로 진행할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Sensors’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고령 운전자 36명의 차량에 특별 제작한 ‘센서’를 설치한 뒤, 약 4800회의 실제 운행 데이터를 분석했다. 센서는 차량 운행 정보 수집 장치와 영상 장치 두 부문으로 구성됐다.

참가자들은 동시에 최대 3년 동안 3개월마다 정밀 인지 기능 검사를 받았다.

차량 운행 데이터와 인지 기능 검사 결과를 함께 분석한 결과, 초기 인지 저하가 나타난 운전자들은 △가속 페달 조작이 일정하지 않았고 △더 짧고 제한적인 운행(마트·병원 등 가까운 곳만 오가는 식의 운전)을 했으며 △속도를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모습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인지 기능이 정상인 운전자들은 △평균 속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필요할 때 제동 반응이 더 적극적이며 △가속 페달 사용도 더 안정적인 특징을 보였다.

연구진은 “특정 행동 하나보다 전체 운전 패턴 조합이 초기 인지 저하를 더 잘 구분했다”고 말했다.
5월 16일 경남 밀양시 하남스포츠센터 지하 실내수영장에 승용차가 뒤집힌 채 물에 잠겨 있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엔 차가 건물 유리창을 뚫고 추락하는 모습이 담겼다(위 작은 사진). 사고로 70대 운전자와 50대 수영장 이용객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남경찰청 제공
5월 16일 경남 밀양시 하남스포츠센터 지하 실내수영장에 승용차가 뒤집힌 채 물에 잠겨 있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엔 차가 건물 유리창을 뚫고 추락하는 모습이 담겼다(위 작은 사진). 사고로 70대 운전자와 50대 수영장 이용객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남경찰청 제공

연구진은 초기 인지 저하가 시작되면 운전자 스스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운전 행동을 조절하는 ‘자기 조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야간 운전을 피하고, 낯선 길 대신 익숙한 동네만 다니며, 먼 거리 이동을 줄이고, 복잡한 도로나 고속도로 운전을 회피하는 식이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도 초기 인지 저하 그룹은 더 짧고 잘게 나뉜 운행 패턴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것이 단순 습관 변화라기보다 인지 기능 저하의 초기 신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운전 패턴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일반적 예상과 달리 급제동 빈도가 정상군에서 오히려 더 많았다. 얼핏 보면 위험 운전처럼 보이지만 연구진은 이를 ‘위험 운전 증가’라기보다 도로 상황 변화에 대한 즉각적 대응 능력 차이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즉 도로 상황 변화에 즉각 반응해 필요한 순간 제동하는 능력이 유지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초기 인지 저하 그룹은 전체적으로 운전이 더 위축되고 반응성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이번 연구는 한계도 있다. 참가자 수가 36명으로 적고,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3명뿐이어서 이번 결과를 과도하게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현실적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인지 기능 저하를 병원 검사실이 아닌 차량 운행 데이터 분석을 통해 조기 발견할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연구 책임자인 루스 태펀 교수는 “특히 주목할 점은 여러 운전 패턴을 함께 분석했을 때 두 집단이 매우 뚜렷하게 구분됐다는 사실”이라며 “모든 행동 데이터를 종합했을 때 이 모델은 인지 기능이 정상인 운전자와 초기 인지 저하가 있는 운전자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구별했다”고 말했다.

이어 “차량 센서를 통해 수동적으로 수집되는 일상적인 운전 습관 데이터는 인지 저하가 눈에 띄게 드러나기 훨씬 이전 단계에서 미묘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강력한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초기 인지 저하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운전을 중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본인이나 가족이 다음과 같은 변화를 반복적으로 느낀다면 점검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신호 대응이 예전보다 늦어진다
△주차 실수가 늘었다
△사고·접촉 사고가 잦아졌다
△익숙한 길에서도 방향을 헷갈린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대응이 어렵다
△운전 후 긴장감과 피로가 커졌다

연구진은 향후 더 큰 규모 연구를 통해 차량 센서 기반 운전 패턴 분석이 실제 치매 조기 선별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지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 논문 주소: https://dx.doi.org/10.3390/s26010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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