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허가 없는 사체 조직 ‘콜라겐 부스터’, 일부 의사들 과잉홍보 논란 [홍은심 기자와 읽는 메디컬 그라운드]

  • 동아일보

화상-재건 등 치료목적으로 개발… ECM 스킨부스터, 미용시장 확산
의료기기 허가 없이 주사제 사용… 의사들 SNS서 “즉시 효과” 강조
심의 안 거쳐 ‘의료법 위반’ 소지

사체 조직에서 얻은 ‘인체유래 콜라겐’ ECM 스킨 부스터를 홍보하는 의사들. 인스타그램 캡처
사체 조직에서 얻은 ‘인체유래 콜라겐’ ECM 스킨 부스터를 홍보하는 의사들. 인스타그램 캡처
“세포외기질(ECM) 부스터, 피부 속 콜라겐을 깨운다.”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쏟아지는 홍보 문구다. ‘콜라겐 부스터’라는 이름 아래 허가받지 않은 사체(死體) 조직 유래 제품이 미용 시술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허가 없는 제품, ‘인체 유래 콜라겐’의 함정

인체 유래 무세포동종진피(hADM) 성분을 함유했다는 ‘ECM 스킨 부스터’는 사체의 피부 조직에서 세포와 지방을 제거한 뒤 남은 단백질 구조체(콜라겐·엘라스틴 등)를 활용한다. 인체 조직을 가공해 만든다는 점에서 ‘인체조직유래 콜라겐’ 혹은 ‘무세포동종진피’로 불린다. 이 기술은 본래 화상·재건 수술 등 치료 목적의 이식재로 개발됐지만 최근 미용 시술 시장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이다. 인체 조직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조직은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시설·인력·품질관리 체계를 인증하는 절차일 뿐 제품의 의료기기·의약품 허가와는 별개다.

ECM 스킨 부스터 제조사는 조직은행 허가를 보유하고 있지만 주사제로 피부에 주입되는 이 제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수의 의료기관에서는 이를 피부 재생·탄력 개선 시술용 주사제로 사용하고 있다.

한 피부 미용 클리닉 원장은 “과거에도 허가받지 않은 제품을 피부에 주사했다가 염증이 생겨 문제가 된 사례가 있었다”며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만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는데 홍보에 밀려 현장에서 쉽게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자 식약처는 2023년 ‘피부재생 시술 시 허가된 제품 사용’을 권고하는 공문을 의료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현재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는 ECM 스킨 부스터를 홍보하는 의료인 계정이 여럿 포착된다. 일부는 시술 장면을 그대로 게시하거나 환자 사진을 활용해 ‘즉시 효과’를 강조한다. 의사가 직접 자신에게 시술하는 모습을 공개해 제품 신뢰도를 부각하는 사례도 있다. ‘ECM 스킨 부스터 시술 후기’ ‘ECM 부스터 효과’ 등의 게시물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환자 유치 마케팅에도 활용되고 있다. SNS에서 의료인들이 직접 나서 허가받지 않은 제품을 홍보하는 상황이다.

광고 심의를 거치지 않은 이러한 홍보는 의료법 위반 소지도 있다. 의료인이 의료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의료광고 사전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는 허위·과장·비방 광고로 인한 환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다.

의료인의 과열 홍보, 기업은 책임 회피

ECM 스킨 부스터를 제조·판매·유통하는 회사들은 “ECM 스킨 부스터는 치료 목적 제품이지만 사용 방식은 의사 판단에 따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품을 출시한 뒤 ECM 재생 효과 등을 주제로 의료진 대상 세미나를 개최하며 사실상 미용 시술 제품으로 홍보했다. 회사는 치료 목적의 제품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시장에서는 피부 미용 부스터로 소비되는 이중적 전략을 펼친 셈이다.

일부 전문가는 안전성 검증의 부재도 우려한다. 한 클리닉 원장은 “아직 임상 데이터가 없고 프리온 단백질(PrP) 등 감염 인자 제거 검증이 공개되지 않았다”며 “피부에 직접 주사하기 때문에 회사는 민감도 높은 시험을 통해 안전성 여부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ECM 스킨 부스터를 판매하는 회사들은 ‘조직은행 허가’를 근거로 현행 법망을 비켜섰고 의료인들은 광고 심의 없는 SNS 홍보로 시장을 키웠다. 피해의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된다. 일부 의사는 “환자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의사들이 의료기기 허가도 받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무분별하게 홍보하는 행위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자는 ‘의사 추천’을 믿고 시술대에 오른다. 그러나 법적 책임의 경계는 모호하고 환자는 화려한 광고 속에서 허가·검증·안전성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헬스동아#건강#의학#과잉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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