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인공위성을 싫어해[신아형의 코스모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9일 15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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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 일러스트. 나사


전쟁에서 통신만큼 중요한 건 없을 겁니다. 작전을 지시하고 적의 위치를 파악해 공격하고 또 방어하려면 아군끼리 긴밀히 정보를 주고받을 통신 수단은 필수죠.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통신의 중요성을 환기시켰습니다. 특히 인공위성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인공위성은 인류에게 이미 친숙한 존재이지만 막상 어디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 밖에서 ‘열일’하고 있을 인공위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뉴턴과 케플러의 1600년대 유산
위성(satellite)이란 행성과 별 등의 천체 주변을 도는 천체 또는 물체를 뜻합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지구와 지구 주위는 도는 달 모두 위성입니다. 인간이 지구 주위를 돌도록 인공적으로 쏘아 올린 위성이 ‘인공위성’이죠.

인공위성이 지구를 공전하도록 만드는 비법은 중력과, 속도, 거리에 있습니다. 끌어당기는 지구의 중력에도 끈임없이 특정 궤도를 돌도록 하기 위해선 속도를 필요한 만큼 높여야 합니다.

인공위성은 궤도 위치에 따라 크게 (1)저궤도 위성(LEO) (2)중궤도 위성(MEO) (3)정지궤도 위성(GEO)으로 나뉩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각각 160~2000km, 최고 2만200km, 최고 3만5785km 떨어진 상공에서 돌죠.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어도비스톡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어도비스톡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기억하시나요? 이 법칙에 따르면 두 질량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크기는 물체 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합니다. 지구와 가까울수록 위성에 가해지는 중력의 힘은 커집니다.

그만큼 위성의 속도도 높아져야 합니다. 따라서 저궤도 위성은 초속 약 8km, 멀리 떨어져 있는 정지궤도 위성은 초속 약 3km 속도로 움직여요. 만약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려지거나 빨라지면 인공위성은 지구로 떨어져버리거나 우주 어딘가로 날아갈 겁니다.

인공위성 운동원리.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
인공위성 운동원리.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

로켓과 추진체를 이용해 위성의 속도를 올리고 나면 진공 공간의 우주에서는 이 속도가 유지됩니다. 결과적으로 끌어당기는 지구 중력과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원심력 균형이 맞춰져 위성은 한 궤도에서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궤도 이동 경로. 유럽우주국(ESA)

인공위성 80% 이상은 저궤도에 있습니다. 제일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지구 한바퀴를 도는 데 84~127분밖에 안 걸립니다. 또 신호를 빠르게 주고 받을 수 있어 기상관측, 위성 전화 등에 쓰이고 사진 촬영에 유용합니다. 제작 및 발사 비용도 저렴해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 등 민간 기업들이 앞다퉈 저궤도 인공위성을 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위성 한 개가 관측할 수 있는 지구 면적이 작아 지구 전체를 관측하려면 여러 개의 저궤도 위성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정지궤도 이동경로. 유럽우주국(ESA)

정지궤도 위성의 경우 공전주기가 23시간 56분 4초로 지구의 공전주기와 같습니다. 때문에 지구에서 보면 항상 같은 곳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죠. 또 한 위성이 지구 전체 면적 1/3까지 관측할 수 있어 지구 전체를 보려면 단 3개면 충분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지궤도 위성은 방송 위성 등으로 쓰입니다.

아이작 뉴턴(1643~1727)(사진왼쪽)과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아이작 뉴턴(1643~1727)(사진왼쪽)과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여기서 잠깐
1687년 발간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해 만유인력의 원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근대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과 1609~1619년 행성법칙을 발표한 ‘천문학의 아버지’ 요하네스 케플러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인공위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천체의 공전주기와 궤도 거리 간 관계를 정의한 케플러 법칙에 적용하면서 우주의 보편적 진리가 탄생했죠.


21세기 군대는 ‘우주의 힘’이 필요하다
기상관측부터 방송, 인터넷, 내비게이션까지 현대인은 인공위성 덕분에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인공위성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군대입니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4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마을에서 장갑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AP 뉴시스

제이 레이몬드 미국 우주군 사령관은 6일(현지 시간) 영국 BBC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밀 폭격, 미사일 사전 경고를 비롯해 미국과 동맹들에 대한 위협에 대비하는 데 우주의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간 업체의 우주개발 역량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첫 전쟁”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3월 우크라이나 부차 민간인 대학살과 4월 러시아 해군의 상징, 미사일순양함 모스크함의 격침 등이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민간인 학살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인공위성의 눈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에는 부차 거리 곳곳에 방치된 시신들이 포착됐습니다. 또 흑해에 있는 모스크바함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인공위성 덕분이었죠. 이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를 탈환하는 데 핵심 전력으로 쓰인 미국의 지원 무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역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합니다.

3월 미국 민간위성업체 맥사가 촬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 시신들이 거리에 방치돼 있다. 영국 BBC 캡처
3월 미국 민간위성업체 맥사가 촬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 시신들이 거리에 방치돼 있다. 영국 BBC 캡처

미군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AP 뉴시스
우주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뉴시스
아마 지금 인공위성이 가장 거슬리는 사람은 푸틴일 겁니다. 안그래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 실상부터 군사 계획들까지 낱낱이 공개되고 있으니까요.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2월 우크라이나 침공 한시간 전 미국 인공위성 업체 비아샛(Viasat)을 해킹했습니다. 이와 관련 미 사이버보안 업체 센티넬원의 한 연구원은 “지상군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적군의 기술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데 사이버 공격이 이용된 최초의 현실 세계 사례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사이버 공격 외에도 러시아와 중국은 1980년대부터 우주에 있는 인공위성에 직접 미사일을 쏴 파괴하는 실험을 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15일에는 러시아가 옛소련 시절 쏘아 올린 자국 인공위성 ‘첼리나-D’를 미사일로 요격하면서 이때 생겨난 파편과 충돌 위험에 놓인 국제우주정거장(ISS) 우주비행사들이 긴급히 대피해야 했죠.
러시아 벨고로드에서 목격된 의문의 불빛. 트위터 캡처

이달 4, 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접경도시인 벨고로드에서는 하늘로 향하는 의문의 불빛을 봤다는 목격담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불빛의 정체를 두고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인공위성 요격 레이저포를 시험 발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최근 토니 라다킨 영국 국방참모총장은 “러시아가 서방 국가의 인공위성을 타깃으로 한 우주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죠.

오늘날 인공위성은 21세기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수단을 넘어 갈수록 더 치열해지는 패권 전쟁의 도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인간이 지구 밖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은 1만 개가 넘었습니다. 인공위성과 발사체 파편 등 1만t에 가까운 ‘우주쓰레기’가 현재 우주에 떠돌고 있죠. 인류가 만들어가는 우주 미래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이제는 다같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광기를 계산하지는 못한다”
-아이작 뉴턴(1643~1727)-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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