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 특허 분쟁 2라운드서도 MIT-하버드대팀이 이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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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특허청 “원천기술 개발 더 빨라”…2020년 노벨상 수상한 UC버클리
‘세기의 특허 전쟁’서 사실상 패배…일부 기업은 특허권 다시 구매해야
국내 기업 툴젠도 특허 전쟁 참전…“내년 수조원 규모 기술 주인 윤곽”

최근 전 세계 생명공학 혁명을 주도하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특허 분쟁 2라운드에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가 또 한번 경쟁자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를 누르고 승리했다. 미국 특허청이 약물 개발에 필수적인 생물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기술을 브로드연구소가 UC버클리보다 먼저 개발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질환 치료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기술 등에 이용되며 수조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소송이 세기의 특허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다.

UC버클리의 특허를 활용해 온 기업들은 향후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국내 생명공학기업 툴젠은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기술을 미국에 가장 먼저 특허를 출원한 만큼 향후 특허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전망도 나온다.
○ 노벨상 수상과는 별개인 특허 분쟁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체의 특정 DNA를 효소를 활용해 정확히 찾아 잘라낼 수 있는 교정기술이다. 미국 특허청은 지난달 28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둘러싼 특허 분쟁에서 브로드연구소의 손을 들어줬다. 브로드연구소가 제출한 연구노트 등을 토대로 2012년 7월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실험에 먼저 성공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특허법은 2013년 3월 선출원주의로 개정되기 전 기술에 대해서는 먼저 발명한 사람을 특허권자로 인정하는 선발명주의를 택해 왔다. UC버클리가 이날 바로 이의를 제기해 다음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처음 발표한 쪽은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와 같은 연구실에 있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 연구팀이다. 둘은 2020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UC버클리는 2012년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시험관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기술을 선보이고 이에 앞서 5월 특허를 출원했다.

반면 브로드연구소의 펑장 교수팀은 처음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진핵세포에 적용할 수 있음을 증명해 2013년 1월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러나 펑장 교수팀은 미국의 신속심사제도를 이용해 앞서 특허를 출원한 UC버클리보다 먼저 특허 심사를 받았고 2017년 먼저 특허를 취득했다. UC버클리는 2018년 뒤늦게 특허를 취득했다.

UC버클리는 2014년 브로드연구소의 신속심사 출원 사실이 알려지자 곧바로 특허를 침해받았다며 이의를 신청했고 분쟁의 1라운드가 시작됐다. 미국 특허심판원이 2018년 브로드연구소 연구 결과가 독자 특허를 받을 수 있다고 최종 판정하면서 브로드연구소 특허가 독립적으로 유지되게 됐다. 사실상 UC버클리가 패배한 것이다.
○ 진핵세포 적용기술을 누가 먼저… 특허전쟁 2라운드
UC버클리 측은 이후 항소를 제기했고 사실상 특허 전쟁 2라운드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진핵세포 적용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브로드연구소 측은 펑장 교수팀이 2012년 7월 이미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UC버클리는 자신들이 2012년 8월에 제브라피시를 대상으로 실험에 성공했고, 그보다 앞서 논문에서 DNA를 절단하는 효소를 운반하는 가이드 메신저리보핵산(RNA)이 진핵세포 유전자 교정에 필요하다고 이미 기술했다는 주장을 폈다.

미국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은 기술을 먼저 구현한 경우에만 발명이 인정된다는 점을 들어 브로드연구소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에 따라 미국 내에서 UC버클리의 특허를 구매한 기업들은 진핵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기 위해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UC버클리는 즉각 항소 의지를 밝혔다. 반면 브로드연구소는 UC버클리와 지속적으로 합의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성명을 냈다.
○ 한국 기업 ‘툴젠’도 특허 전쟁에 참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 전쟁에는 국내 기업 툴젠도 참전하고 있다. 툴젠은 2012년 10월 진핵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기술로 미국에 특허 가출원을 진행했다. 미국 특허청은 툴젠의 특허에 대해 다른 특허와 독립된 기술인지를 가리는 심사를 진행 중이다. 툴젠 관계자는 “이번 브로드연구소의 승리는 연구노트 내용으로 선(先)발명을 인정한 것으로 툴젠에는 유리한 결과”라며 “서울대와 함께 연구하며 만든 연구노트를 모두 갖고 있고 이번에 공개된 두 기관의 객관적 발명일보다도 빠른 발명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툴젠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에는 툴젠 특허의 선발명을 놓고 방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수조 원 규모로 평가받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싼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기술시장조사업체 이머젠 리서치에 따르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시장 규모는 2020년 14억4600만 달러(약 1조7410억 원)에서 매년 20.4% 성장해 2028년 62억2100만 달러(약 7조49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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