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은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y)’을 개발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살아있는 세포 속 생체분자의 구조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기초과학은 물론 의약분야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뒤보셰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4일(이하 현지 시간) 자크 뒤보셰 스위스 로잔대 생물물리학 명예교수(76), 요아킴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생화학분자생물학 교수(77), 리처드 헨더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학연구위원회(MRC) 연구원(72)을 ‘2017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생명체 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체분자들의 움직임으로 결정된다. 유전정보를 담은 DNA,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 지방 등이 모두 생체분자다. 수상자들은 미시 세계 속 생체분자를 고해상도 3차원(3D) 이미지로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빛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빔을 시료에 쏘는 전자현미경은 아주 작은 물체도 관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세포는 시료로 쓸 수가 없었다. 전자빔이 워낙 강력해 시료가 곧바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극저온전자현미경은 이 한계를 이겨냈다.
서영덕 한국화학연구원 나노라만융합연구센터장은 “생체분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급랭시켜 순간 포착하는 기술”이라고 했다.
헨더슨헨더슨 연구원은 1990년 사람 몸 속의 태양광발전소로 불리는 ‘박테리오로돕신’의 고해상도 3D 이미지를 전자현미경으로 얻었다. 전자현미경을 생물의 정밀한 관측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헨더슨 연구원은 생체 미세 구조를 파악하고자 하는 생명과학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준 탁월한 연구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헨더슨 연구원이 케임브리지대 MRC 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해당 기관에서 유학했다. 이 교수는 “MRC의 소장으로 기관을 이끌면서도 개인 연구실을 계속 운영하며 학생 지도와 연구에 대한 열정도 놓지 않았던 사람으로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프랑크프랑크 교수는 무작위한 분자들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추적해 전자현미경의 2D 영상을 3D 구조로 나타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뒤보셰 교수는 시료 주변의 수분을 급속 냉각시켜 생체분자가 진공 상태에서도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들의 발견 후 지속적으로 발전한 극저온전자현미경은 2013년 마침내 원자 수준 해상도에 도달했다. 2015년에는 극저온전자현미경이 브라질에서 창궐한 지카바이러스의 약점을 찾아내 타깃 약물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서 센터장은 “생물학자들의 도구였던 전자현미경의 해상도가 높아져 분자, 원자 단위까지 관측할 수 있게 돼 생물학적인 현상을 화학적으로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이 노벨 화학상 수상의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수상자 3명은 상금 900만 크로나(약 12억6000만 원)를 나눠 갖는다. 이로써 올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발표됐다. 과학 외 분야인 문학상(5일), 평화상(6일), 경제학상(9일) 선정자 발표가 남아 있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열린다.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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