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 ‘다리 밑 학교’ 아이들의 생애 첫 과학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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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자들의 색다른 봉사

이달 1일 인도 델리 야무나뱅크 지하철역 아래. 동아사이언스 기자들은 ‘다리 밑 학교’ 학생들의 일일교사 역할을 자처했다. 아이들과 기자들이 직접 만든 잠망경을 들어 보이며 기념사진 포즈를 취했다. 델리=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bshin@donga.com
이달 1일 인도 델리 야무나뱅크 지하철역 아래. 동아사이언스 기자들은 ‘다리 밑 학교’ 학생들의 일일교사 역할을 자처했다. 아이들과 기자들이 직접 만든 잠망경을 들어 보이며 기념사진 포즈를 취했다. 델리=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bshin@donga.com
“꿈이 뭐니?” 기자의 질문에 열한 살쯤 돼 보이는 ‘다리 밑 학교’ 학생 푸남 잔두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잔두는 자기 나이와 생일을 모른다. 가난으로 주민 등록 신고조차 못한 잔두에게 장래희망보다 중요한 건 당장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이다. 동아사이언스의 과학기자 4명이 과학실험 도구를 들고 인도 델리로 향했다. 잔두와 같은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어서다.

○ 먼지와 쓰레기 속 희망을 찾는 ‘다리 밑 학교’

여행 일정을 할애해 인도 빈민가 어린이들에게 과학교육 봉사활동을 진행한 동아사이언스의 고은영, 최지원, 신수빈, 권예슬 기자(왼쪽부터).
여행 일정을 할애해 인도 빈민가 어린이들에게 과학교육 봉사활동을 진행한 동아사이언스의 고은영, 최지원, 신수빈, 권예슬 기자(왼쪽부터).
노동절인 이달 1일. 온도계는 섭씨 47도를 가리켰다. 태어나 처음 겪는 무더운 날씨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이동수단 ‘오토릭샤’를 타고 30분가량 달려 델리의 ‘야무나뱅크’ 지하철역 아래로 향했다. 다리 밑 형형색색의 낙서 속에서 ‘교육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곳이 목적지인 ‘다리 밑 학교(Free School Under the Bridge)’다.

다리 밑 학교는 학비가 싼 공립학교조차 다닐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비공식 학교다. 락스미 찬드라 교장이 2005년 나무 아래 아이들 몇 명을 모아 공부를 가르치며 시작됐다. 인력거를 모는 ‘릭샤꾼’, 쓰레기를 주워 파는 사람, 걸인들이 자식들을 보냈다. 나무 아래선 힌디어와 영어, 수학을 가르쳤다. 허기진 아이들이 배를 채우도록 케이크와 과자 등 간식도 줬다. 소문을 듣고 모여든 아이들이 어느덧 250명이다.

‘아∼ 먼지, 어떡해….’

현장에 도착하자 먼저 눈에 띈 것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교실 천장이기도 한 다리의 밑면엔 먼지가 새까맣게 끼어 있었다. 주변엔 쓰레기가 가득 쌓여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러나 매일 2시간씩 걸어서 등교하는 어린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 따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편안한 모습이다. 오전 9시. 흙바닥에 깔린 카펫에 100여 명의 남학생이 앉았다. 낯선 피부색의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굿모닝, 맴(Ma‘am)∼”

○ 일일 선생님과 함께 한 생애 첫 과학실험

“우주선을 발사해 볼게! 셋, 둘, 하나 ‘슝∼!’ 이제 선생님처럼 만들어 보자.”

자석의 척력으로 우주선 모양의 종이를 들어 올리는 실험을 선보였다. 다리 밑 학교엔 5∼14세 사이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다닌다. 과학 실험 도구를 나눠주자 ‘모두 신이 났다. 서로 찰싹 붙기도 밀어내기도 하는 자석을 직접 만져본 건 처음이란다.

실험을 잘 따라온 학생에겐 칭찬의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완성한 실험도구를 가져와 일일선생님 앞에 줄을 선다. 칭찬을 받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자석은 어디에 쓰일까?”

연이은 하이파이브로 손이 얼얼해진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한국 학생들이라면 금세 ‘냉장고 문’ 내지는 놀이기구 ‘자이로드롭’을 떠올렸을 터. 냉장고도 놀이기구도 낯선 인도의 아이들은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지구도 거대한 하나의 자석이란 설명을 듣자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닷속을 다니는 잠수함은 물 밖 상황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에게 칠판에 그림을 그려 잠망경의 쓰임을 설명했다. 잠망경을 만들기 위해 거울을 두 개씩 나눠주자 여학생들은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기 바쁘다. 어줍은 손으로 잠망경을 완성한 아이들은 곧바로 눈을 가져다 대다 웃음을 터뜨렸다. 고은영 기자가 잠망경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어?”

수업 후 몇몇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건넸다. 친구들의 소란을 제지하던 ‘학급 반장’ 랴오(13세)는 잠수함의 선장이 되고 싶단다. 실제로 깜깜한 물속에서 태양빛으로 빛나는 물 밖 세상을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델리=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인도 델리#다리 밑 학교#동아사이언스#과학교육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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