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뼈 나이 1초면 알려줘… ‘알파고 의사’ 국내 등장 눈앞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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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도 ‘AI 혁명’]‘의료용 AI’ SW 10월말 임상시험

 대한민국 의료계에 인공지능(AI) 혁명이 임박했다.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AI 업계에 따르면 ‘알파고’의 학습 방식인 딥러닝을 활용한 의료용 AI 진단·검출 보조 소프트웨어가 이달 말 국내 최초로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거쳐 내년 초 상용화될 예정이다. 식약처는 AI 임상시험 자료를 옛 환자의 진료 기록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이례적으로 허용하는 등 규제 완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 두뇌부터 전립샘(선)까지 ‘AI 의사’가 진단

 의료용 진단·검출 보조 소프트웨어는 환자의 엑스레이 등 의료 영상을 분석해 질환 위험도를 측정하거나 병변 의심 부위를 표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의사의 판단과 환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거쳐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아야 실제 진료에 활용할 수 있고 건강보험도 적용된다. 진단용은 2012년 11월 3등급 의료기기(4등급에 가까울수록 허가 절차가 까다로움)로, 검출용은 올해 8월 2등급으로 각각 분류가 신설됐지만 아직 신청 사례가 없다. 최근 길병원이 도입한 IBM의 ‘왓슨’은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의료기기가 아닌 ‘의료용 정보 검색기’로 분류돼 임상시험 절차를 밟지 않았다.

 첫 임상시험 사례로는 AI 스타트업 뷰노의 ‘엑스레이 기반 소아 골 연령(뼈 나이) 측정 소프트웨어’가 유력하다. 소아와 청소년의 손 엑스레이를 기존에 딥러닝으로 학습한 3만여 건의 자료와 대조해 뼈의 발달 정도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기존엔 의사가 엑스레이 영상을 도록과 일일이 대조해야 했기 때문에 성장클리닉마다 다른 진단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에 참여한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연구팀은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1초 내에 정확도 96.2%에 이르는 추정 값을 받아볼 수 있어 진료 시간이 현재의 20분의 1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뷰노는 이달 말 검출 보조용(2등급)으로 임상시험을 신청할 계획이다.

 진단 보조용(3등급)으로 임상시험을 받을 첫 사례는 마이다스아이티의 ‘인브레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브레인은 두뇌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3차원으로 변환한 뒤 대뇌 피질 두께와 해마의 변형도 등 치매와 관련이 있는 요인을 측정하고 기존 치매 환자의 자료와 대조해 치매 위험지수를 소수점까지 예측해준다. 마이다스 관계자는 “연내에 임상시험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국내에서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AI 진단 소프트웨어는 1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OBS코리아와 서울대치과병원의 ‘치과 파노라마 엑스레이 판독기’는 내년 5월 상용화를 목표로 서울대병원 임상윤리위원회(IRB)에서 적정성 검토를 받고 있다. 루닛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폐암 유방암 등 각종 질환을 진단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딥바이오는 전립샘 조직 광학현미경 영상으로 전립샘암 악성도를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두뇌에서 전립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컴퓨터 의사’가 도입된다는 뜻이다.

○ 규제는 완화하지만 지원은 ‘찔끔’

 글로벌 의료용 AI 시장은 2022년 14억3000만 달러(약 1조60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의료용 AI의 기능을 평가할 때 이미 진료를 마친 옛 환자의 자료를 활용하는 ‘후향(後向) 시험’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느 의료기기를 심사할 땐 임상시험이 시작된 이후 새로 모집된 환자의 자료만 인정하는 ‘전향(前向) 시험’ 방식을 적용한다. 하지만 딥러닝 방식 AI의 정확성을 입증하려면 특정 질환 환자군 수천 명의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향 시험으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식약처는 이를 개선하는 내용을 산학연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확정해 11월 초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의료용 AI를 육성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알파고 열풍 이후인 8월 부랴부랴 AI 산업 육성책을 발표하며 ‘AI 기반 진단·치료 지원’이라는 과제를 끼워 넣었지만 예산도,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도 없는 선언적인 내용으로만 이뤄져 있다. 일본 정부가 올해 추경 예산 10억 엔(약 108억 원)을 들여 2019년 상용화를 목표로 의료용 AI 프로젝트 참가자를 모집하고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의료용 AI가 정확성을 개선해 나가려면 환자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재학습하는 체계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의료 정보 유출 우려 탓에 관련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한 IT 업체 관계자는 “익명화된 환자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어떤 검증 절차를 밟아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등을 정부가 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AI가 오류 내도 최종 책임은 의사가”

 의료용 AI의 오류에 따른 오진 책임은 최종적으로 인간 의사가 져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AI는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 생명과 직결된 최종적인 결정과 의료 행위의 책임은 의사의 몫이라는 뜻이다. 이언 길병원 인공지능기반정밀의료추진단장(신경외과 교수)은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운전했다고 해서 운전자가 차량 사고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AI의 수준이 급격히 높아져도 당분간은 인간의 종합적인 판단 능력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AI가 폐암을 기가 막히게 정확히 진단하더라도 실제 환자는 “내가 폐암이냐”고 묻지 않고 “숨이 차다”며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사람이 숨이 찬 이유는 수백 가지인데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살펴 질환을 찾아가는 역할은 아직 AI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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