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보고 사는 ‘안방 쇼핑’ 시대 성큼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8분


“옷감이 까칠까칠하네” “냉장고 문이 부드러웠으면…”

광주과기원 진동감지 장갑 개발… 부피-재질 등 느껴

이르면 내년 상용화… 음악레슨 등 ‘e러닝’ 활성화될듯

경기 김포시에 사는 이지연(29) 씨는 최근 홈쇼핑을 통해 산 겨울 외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이 상했다. 피부에 닿는 외투 안감이 너무 까칠했던 것. 이 씨는 “옷은 매장에 들러 직접 입어보고 사야 한다는 얘기가 실감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이 씨처럼 후회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광주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한 국내 연구진은 최근 ‘촉각 방송’ 실현에 필요한 각종 시제품을 생산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는 텔레비전의 기본 원칙이 거대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집안에 단말기 설치 생생한 촉각 느껴

촉각 방송의 핵심 기술은 ‘햅틱(Haptic)’이다. 그리스어로 촉각을 뜻하며 피부 근육 관절 등에서 전해지는 모든 감각을 말한다. 지난해 휴대전화 시장을 휩쓴 햅틱 열풍은 진동으로 전하는 ‘손맛’을 내세웠다.

손맛, 즉 촉각은 크게 부피 거칠기 온도 등을 관장하는 ‘촉감’과 유연성 무게 등과 관련한 ‘역감’으로 구분된다.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는 물건의 영상 정보를 가공해 이 두 가지 느낌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촉각 방송을 구현하는 열쇠다.

촉각 정보를 뽑아내는 데에는 물건의 전체 모양을 훑는 3차원 스캐너, 그리고 적외선을 쏴 모양과 크기를 알아내는 ‘깊이 카메라’가 동원된다. 이 두 장비는 석고를 물건 겉면에 발라 모양을 뜨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이렇게 잡아낸 겉면에 무수히 점을 찍어 3각형으로 연결하는 ‘3차원 메시 모델링’을 적용한다. 애니메이션이나 입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에도 적용되는 이 과정을 거치면 입체감이 뚜렷해진다. 여기에 거칠기와 같은 표면 정보를 더해 시청자가 집에 갖고 있는 단말기에 송신하면 생생한 촉각을 느낄 수 있다.

○ TV 보며 온도 느낄 수 있는 센서 개발 한창

촉각 기술이 대중화되기를 가장 고대하는 분야는 홈쇼핑이다. 지금은 옷감의 거칠고 부드러운 정도,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필요한 힘, 테니스 라켓을 쥔 손아귀의 느낌을 시청자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하지만 촉각이 시청자에게 전달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반품되는 물건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상거래의 무대가 현실 세계의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2007년 광주과기원 연구팀은 진동을 일으키는 76개의 부품이 달린 장갑을 개발해 이 같은 연구의 상용화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최근에는 시청자가 온도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센서를 장착하는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다. 연구팀은 2010년을 상용화 시점으로 내다보고 있다.

드라마 시청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여자 주인공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거나 산처럼 든든한 남자 주인공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 가능하다. 시청자들은 좀 더 충실하게 촉각 정보가 입력된 드라마를 선호하게 돼 시청률 경쟁의 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e러닝, 특히 예체능 분야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05년 광주과기원 연구팀은 초보자도 쉽게 지휘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음악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임이 바뀌는 지휘봉 시제품을 내놓았다. 선생님이 학생의 손을 잡고 지휘봉을 조작하는 효과를 내는 것. 음악을 배우려면 피나는 일대일 레슨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질 수도 있다.

광주과기원 류제하 촉감기술연구센터장은 “이 기술을 대중화하려면 장비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적 노력은 물론이고 촉각을 구현하는 장비에 넣을 ‘문화 콘텐츠’가 필요하다”며 “방송 제작자, 교육자, 예술가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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