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교사를 고발합니다’…도 넘은 네티즌 인신공격

  • 입력 2008년 6월 10일 19시 30분


9일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 '썩은 교사를 고발합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서울 모 중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A 교사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야기 했다'는 내용의 글에는 학교 전화번호는 물론 해당 교사의 실명과 휴대 전화번호까지 포함돼 있었다.

글을 올린 누리꾼은 "학교나 담임선생님에게 항의해주셔서 다시는 자격 없는 교사가 신성한 교실에서 망언을 일삼지 않도록 힘을 보태달라"며 다른 네티즌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 글이 올라온 직후 해당 학교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A 교사의 휴대전화로는 욕설과 항의 문자가 쏟아졌다. A 교사는 이날 오후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학교에 항의전화 했다' '문자를 남겼다'는 댓글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보다 못한 한 누리꾼은 '숨어서 무고한 선생님을 죽이는 행위는 우리 민주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반민주적 사이버테러다'며 자제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자신을 이 학교 학생이라고 소개한 다른 네티즌도 '선생님의 의도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학생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말이 너무 많이 왜곡되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성난 누리꾼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10일 학교에서 만난 A 교사는 전날의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료 교사는 "문제의 글을 봤는데 매우 왜곡됐다.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교사의 수업내용을 이렇게 공격한다면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한 학생은 "선생님이 쇠고기 이야기를 한 것은 맞지만 무조건 미국산 쇠고기가 좋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며 "평소에도 열정적으로 수업을 해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어서 친구들도 (누리꾼의 인신공격에)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 식 인신공격은 법적인 처벌과 별개로 개인에 대한 인격살인이자 민주주의를 가장한 대중의 폭거"라며 "익명의 다수가 마음대로 판단해 행동하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배태호기자 news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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