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 같지 않은 아름다운 프린터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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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얇은 흑백 레이저 프린터인 ‘스완’(오른쪽)과 복합기 ‘로간’을 디자인한 삼성전자의 배준원 책임디자이너. 스완의 두께는 12cm, 로간은 16.5cm로 기존 동급 제품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하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세계에서 가장 얇은 흑백 레이저 프린터인 ‘스완’(오른쪽)과 복합기 ‘로간’을 디자인한 삼성전자의 배준원 책임디자이너. 스완의 두께는 12cm, 로간은 16.5cm로 기존 동급 제품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하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프린터 같지 않은 프린터’를 만들어 봐라.”

지난해 4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DM)총괄 디지털프린팅사업부의 배준원(39) 책임디자이너에게는 이런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다.

이 숙제를 풀려니 프린터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했다. ‘종이가 걸리지 않고 복사만 잘되면 그만’인 프린터가 아니라 소비자와 감성을 나누고 대화도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프린터를 찾아 나섰다.

수개월의 개념 구상과 1년여의 개발 및 디자인 과정을 거치자 집안의 흉물처럼 여겨져 온 프린터가 책상 위 품격 있는 장식품으로 거듭났다.

8월말 첫선을 보인 세계에서 가장 얇은 흑백 레이저 프린터 ‘스완’(모델명 ML-1631K)과 레이저 복합기 ‘로간’(모델명 SCX-4501K)은 이렇게 탄생했다.

“프린터의 기술 수준은 대동소이해 경쟁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결국 디자인이 제품의 가치를 높여 줍니다. 스완은 제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프린터라고 자신합니다.”

검은 광택의 그랜드피아노를 연상시키는 ‘스완’에 대해 미국의 주요 언론은 “기능만 중시하던 프린터가 외모(디자인)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유럽 시장에서는 스완의 영향으로 ‘피아노 블랙’이란 표현이 널리 쓰이게 됐고, 피아노 콘서트를 이용한 마케팅 행사도 자주 열린다.

배 책임디자이너는 빛과 소리의 디자인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했다. 전원이 꺼져 있는 스완은 그랜드피아노의 표면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작동을 시작하면 복사 비율과 매수 등을 알려 주는 푸른 발광다이오드(LED) 계기반이 신비롭게 등장한다. 계기반 터치센서의 소리는 맑고 경쾌하지만 듣기 싫은 프린터 엔진 소음은 내부 방음벽을 설치해 최대한 줄였다.

“계기반을 숨겨 놓는 표면 처리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검은 광택 표면에서 발산하는 빛의 질감이 뚜렷하고 밝기도 적당해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는 헛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의 프린터는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올 상반기(1∼6월)에는 이 분야 ‘절대 강자’인 HP에 이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까지 올라섰다.

삼성은 프린터를 휴대전화 디지털TV와 함께 ‘정보기술(IT) 3대 제품’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몇 년 전 프린터 사업이 고전할 때는 회사 내에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는데 요즘은 ‘화려한 백조’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프린터 ‘스완(swan·백조)’은 제품 이름이 아니라 내부 프로젝트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칭이 약진하는 삼성 프린터의 요즘 분위기와 신기하게 딱 맞아떨어집니다.”

백조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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