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나 교수, 진료실 속의 性이야기]“할멈, 바람났지?”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이번 주부터 매주 ‘윤하나 교수, 진료실 속의 성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칼럼은 여성 질환이나 성 문제를 진료실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할 것입니다. 윤 교수는 1994년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9년 국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비뇨기과 전문의가 됐으며 2002년부터 이대 목동병원 비뇨기과의 첫 여성 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봐, 뭐하고 있어. 빨리 들어와.”

지팡이를 휘두르며 들어오는 70대 할아버지 뒤로 입을 삐죽이 내밀고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들어오는 할머니. 오기 싫은 걸음을 억지로 떼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거, 내가 뭣 좀 검사해야 쓰것는디. 어험, 그 뭐냐, 정액 검사라는 거 있잖아. 이 할망구가 요즘에 나를 피하는 것이 바람이 난 게 분명해. 어젯밤에도 나를 피했으니 필시 어제 누군가와 잔 거야. 그러니까 지금 정액이 있는지 검사하면 어떤 놈이랑 붙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

나는 웃음을 참으며, 내내 얼굴을 모로 돌리고 한숨만 쉬던 할머니를 검사실로 모시고 들어갔다.

“에그, 미친 영감탱이. 내가 바람은 무슨 바람이야. 아주 내가 죽어요, 죽어. 나이 들어 창피한 줄을 모르고 밤낮으로 밝혀 대는데, 나는 아주 싫어 죽겠다고. 10년 전에 자궁도 다 들어냈는데 내가 뭐가 더 하고 싶겠어? 그러더니 요즘에는 나더러 바람이 났대. 어떤 놈이랑 붙어 자니까 자기랑은 안 자려고 하는 거라면서.”

결국 할머니는 수술과 노화에 따른 호르몬 부족으로 잠자리가 아프고 싫은데, 할아버지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를 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여성이 수술로 인해, 혹은 자연적으로 폐경이 되면 여성 호르몬의 부족으로 잠자리가 힘들고 각종 감염에도 쉽게 노출된다. 또, 원만한 성생활을 위해 여성에게도 적당히 있어야 하는 남성 호르몬도 부족하게 되어 성욕이 떨어지고, 절정도 잘 못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젊은 나이에도 생길 수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여성이 이런 증상으로 고생한다. 그래서 이런 여성들에게는 호르몬 보충 치료가 중요하며, 여성 호르몬의 보충뿐만 아니라 남성 호르몬도 자연스럽게 보충될 수 있는 치료를 받도록 한다.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할아버지는 오해를 풀고 할머니와 화해하셨을까.

어쩌면 나이 드셔서까지 왕성한 성욕과 사랑을 오직 할머니에게로만 향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할머니가 어느 정도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이래서 부부간의 성 문제는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윤하나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