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결혼식’은 연극…철없는 장난에 널뛴 ‘냄비 인터넷’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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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학도들의 상황극으로 밝혀진 ‘지하철 결혼식’의 한 장면(왼쪽)과 지난해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달군 ‘떨녀’와 ‘개똥녀’(오른쪽 위부터).
연극학도들의 상황극으로 밝혀진 ‘지하철 결혼식’의 한 장면(왼쪽)과 지난해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달군 ‘떨녀’와 ‘개똥녀’(오른쪽 위부터).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준 지하철 전동차 내 ‘고아 커플 결혼식’이 대학 연극학도들의 상황극으로 밝혀진 가운데 잘못된 정보에 대한 확인 절차 없이 쉽게 달아오르는 ‘사이버 냄비보도 현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하철 결혼식을 연출한 신진우(26·호서대 연극학과 4년) 씨는 16일 “화제가 됐던 결혼식은 연극학과와 영화학과의 동아리인 ‘연극사랑’이 연출한 게릴라식 실험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여 줘 서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며 “격려와 애정을 쏟아 준 많은 분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덕분에 잠시나마 세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누리꾼들은 소수.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들에 대한 비난 글이 쇄도하는 등 누리꾼들의 반응은 차가워졌다.

누리꾼 ‘djfkl435’는 “오랜만에 접한 따뜻한 소식에 감동받은 사람들을 농락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고아 출신들을 두 번 죽이는 잔인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누리꾼 ‘jeff77’도 “아무리 좋은 뜻에서 한 연극이었다고 해도 연극이었다는 것을 밝혔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태가 확산되면서 신랑 신부 역을 맡은 이모(21) 씨와 조모(23) 씨는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교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 관계자는 “이 사건으로 연극에 참여한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정보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 집단적인 찬사나 비난을 보내는 사이버 문화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잘못된 정보에 따른 사이버 공간에서의 냄비 현상이 악용될 경우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해 4월과 6월에 있었던 ‘떨녀’ 신드롬과 ‘개똥녀 사건’은 사이버 냄비 현상의 대표 사례.

전동차 안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한 여성이 누리꾼들의 집중 비난을 받은 ‘개똥녀 사건’의 경우 일부 누리꾼은 추측만으로 ‘깨똥녀’가 다닌다는 대학 학과에 대한 루머를 퍼뜨려 해당 학과 홈페이지가 누리꾼들의 욕설로 다운됐다.

서울대 서이종(徐二鍾) 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익명으로 접속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반응이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가라앉는다”며 “이런 점을 이용해 기업 광고나 이벤트가 미담이나 진실로 둔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대 허석렬(許碩烈)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 문화와 언론의 속보 경쟁이 빚은 촌극”이라며 “언론이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지 못하면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도 큰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재미로… 눈길 끌려고… 허위정보 ‘낚시글’ 판친다▼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 방문자 수를 늘리려고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낚시글’ 문화도 사이버 냄비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근에는 사실과 다른데도 누리꾼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내용을 올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재미를 위해 인물이나 사건을 패러디하는 수준이 아니라 “야후가 해킹당했다” “지율 스님이 사망했다”는 등 거짓정보를 퍼뜨리는 것.

이 때문에 많은 누리꾼이 틀린 사실에 대해 의견을 올리면서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실제로 1월에는 줄기세포 논문 공저자인 김선종 연구원의 아버지를 사칭해 쓴 가짜 고백문이 인터넷에 게재됐다.

누리꾼들은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바꿔치기’ 주장을 지지하는 결정적 증거라며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홈페이지에 글을 옮겨다 놓았지만 결국 가짜로 밝혀졌다.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과거에는 단순한 장난 정도로 여겨지던 ‘낚시글’이 최근에는 민감한 문제에 대한 왜곡된 정보의 유포, 광고를 위해 악용된다”며 “사이버 공간을 건전한 정보유통의 장으로 만들려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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