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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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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책방 안에서 장시간 책을 읽고 있어도 마음씨 좋은 주인은 안경 너머로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눈치를 주지 않았다. 학교 앞 책방은 지적 호기심으로 넘쳐 있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흔히 ‘아저씨’로 통하던 대학서점 주인은 원하는 책이 언제쯤 서점에 나오는지 알려주고 친근한 말벗이 되어주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동네 책방이 하나 둘씩 문을 닫더니 이젠 주변에서 책방 찾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책방이 있더라도 중고등학교 참고서 위주여서 옛날의 차분했던 서점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동네 책방이 사라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테지만 인터넷 서점들이 덤핑공세를 펴는 탓도 적지 않다. 일부 인터넷 서점들이 책값을 대폭 깎아주고 배송료도 받지 않으면서 정가제를 유지하는 책방이 큰 타격을 입었다. 출판시장에도 시장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찬성이지만 그 결과 독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면 ‘시장의 실패’를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 할인을 염두에 둔 출판사들이 그동안 책값을 너무 올렸고 이것이 구매력을 위축시켜 출판계가 더욱 불황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인터넷을 놔두고 굳이 책방을 찾는 독자들이 많은 것은 학창시절 ‘책방의 추억’에 집착해서가 아니다. 책방에는 인간다운 여유가 있다. 책방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책 향기를 맡으며 함께 책을 고르는 것은 디지털시대에도 포기하기 힘든 책방의 매력이자 낭만이다. 어머니와 아이가 대를 이어 찾는 아늑한 ‘길모퉁이 서점’은 불가능한 꿈일까. 오프라인의 많은 것들이 시대의 물결에 밀려 사라지고 있지만 책방만큼은 예외가 되었으면 하는 미련을 버릴 수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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