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산문집…21세기 벽두 한국에 포퓰리즘 유령이 떠돈다

  • 입력 2004년 2월 9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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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씨(56)의 산문집 ‘신들메를 고쳐 매며’(문이당)가 9일 출간됐다. 작가로서 12년 만의 산문집이며 데뷔 25주년 기념 의미도 있지만 회고성 수필은 아니다.

작가는 전 5장으로 구성된 책 가운데 제1장에 수록된 원고지 160장 분량의 글에서 “(나 자신의)목소리는 분노로 높고 혀는 조롱과 야유의 악의로 뒤틀려 스스로 듣기에도 민망할 지경”(작가 서문 중)이라며 작금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다. 이 글들은 신문 등 다른 매체에 일절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올해 1월 말∼2월 초에 주로 쓰인 것. 이씨는 지난해 12월 29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이씨는 이 책에서 “들린 시대에 내몰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는 듯한 이들에게 내가 해독한 이 시대를 들려주려 한다”고 전제한 뒤 특히 △네거티브 현상 △인터넷 △포퓰리즘 등에 대한 생각을 토로했다.

근래 홍위병 논란, 책 장례식 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씨는 그 시비에 ‘세대 문제’가 끼여 있으며,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이들 속에 “젊은 천둥벌거숭이들이 더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연해지려 해도 “그 젊은이들 뒤에 숨어 헤헤거리며 개혁이나 진보로 자신들의 질 나쁜 패자부활전을 겉꾸림하는 하류 지식인들”, “덜 떨어졌거나 비뚤어진 생각과 믿음을 재야나 시민단체란 그럴듯한 포장지에 싸서 젊은이들을 홀리는 일부 기성세대” 때문에 마음 놓고 편히 돌아설 수 없다고 밝혔다.

▽네거티브 현상=이씨는 1990년대 후반 해외 유학을 마치고 왔지만 국내 엘리트 리그에서 ‘시드 재배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네거티브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네거티브 주도 세력이 △서울대 출신 △반(反) 김대중 또는 제도권 동조 성향 △영남 출신 또는 친(親)영남 정서를 가진 이들을 배척대상으로 삼았으며 이후 당시 김대중 후보가 97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네거티브가 무시할 수 없는 현상으로 우리 사회를 휩쓸게 되었다고 풀이했다.

▽인터넷=이씨는 순정성을 잃은 네거티브 현상과 인터넷이 결합되면서 정치적 파괴력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은 일본 군국주의의 지원병 모집 방식처럼 참여의 착각, 동의의 착각, 인지의 착각, 평등의 착각에 빠진 타락한 광장일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

▽포퓰리즘=이씨는 우리 사회에서 포퓰리즘의 본질은 소수 정권이 쓰는 인기 영합, 대중 매수 정책이며, 그 행태는 원칙과 주의가 뒤섞이고 서로 손잡을 수 없는 세력의 야합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책을 낸 문이당 임성규 대표는 “민감한 시기라는 주변의 지적이 있었지만 이 선생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이라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판단해 출간했다”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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