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7>이상엽 KAIST 교수

  • 입력 2003년 8월 24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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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생물공학의 기대주로 떠오른 한국과학기술원 이상엽 교수. -사진작가 박창민씨
젊은 나이에 생물공학의 기대주로 떠오른 한국과학기술원 이상엽 교수. -사진작가 박창민씨
“집에 레코드판이 3000장이나 있어요. 고등학교 때 청계천 음반가게들을 누비며 열심히 모았죠.” 아직도 장난기가 남아 있을 것 같은 큰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년이다.

그래서인지 ‘만 29세, 한국과학기술원(KAIST)사상 최연소 교수 부임’, ‘썩는 플라스틱 개발의 대부’ 등 10년째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의 제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선생님요? 당구 300에 볼링 애버리지 170이에요.”

공부에서부터 노는 것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이상엽 교수(39)에게 당연히 “천재라는 소리 많이 들으셨죠?”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절대 아니다”고 대답한다. 자신은 ‘보통사람’이란다. 단지 한번 시작한 일은 끝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뿐이라고.

“자신이 노력한 결과가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이 죽은 후에 알려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절대 신념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의 이 한마디가 지금의 이상엽을 만들어냈음을 짐작케 한다. 그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탄생된 에디슨식 천재였던 것이다.

미국에서 생물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그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10개월의 공백이 생기면서 연구소가 아닌 군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연구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던 그에게 군 생활은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육체적으로 너무나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애써 받아온 박사학위를 썩혀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낮에는 방위병으로 국방의 의무에 충실하고, 밤에는 KAIST에서 파트타임 박사후 연구원으로 연구하면서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는 강행군이 1년6개월 동안 계속됐다.

이 기간에 그를 매료시킨 것은 박테리아였다.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물질을 살펴보니 그 화학 구조가 폴리에스테르였다. 폴리에스테르가 플라스틱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그는 박테리아가 플라스틱을 만들었으니 분해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1999년 여름 세계 최초로 대장균을 이용해 썩는 플라스틱으로 불리는 생분해성 고분자를 가장 높은 효율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 실용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로써 그는 세계적 생물공학계의 거장이 학회에서 먼저 다가와 악수를 건네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신념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메뉴를 제시하면서 ‘치킨 또는 비프(chicken or beef)?’라고 물을 때 한국의 청소년들은 ‘생선(fish)’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루 평균 3개 이상의 아이디어를 쏟아내 제자들로부터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창의적인 사고를 강조한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이 교수가 만들어갈 새로운 생물공학의 세계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기자 uneasy75@donga.com

▼이상엽교수는▼

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생물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KAIST 교수가 된 후 썩는 플라스틱을 비롯해 유전병인 윌슨병 조기진단 DNA칩을 개발했다. 유학시절 아예 연구실에 앰프와 스피커를 마련해 놓고 음악을 들으며 연구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1998년 ‘제1회 젊은과학자상’, 2000년 미국 화학회가 주는 ‘엘머 가든상’, 같은 해 최다 피인용 논문 발표자에게 수여하는 ‘사이테이션 클래식상’ 등을 수상했다. 생명공학관련 국제학술지 10여개의 편집자 및 편집위원도 맡고 있다.

△좌우명: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자

△감명 깊게 읽은 책: 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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