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포커스]가족위해 에이즈 검사부터 받자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44분


아기는 결국 에이즈로 진단됐다. ‘설마’ 하면서 검사했는데, 결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기는 태어나서 감기가 끊일 날이 없었고 도무지 체중이 늘지 않았다.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애가 에이즈에 걸렸다니….

아기는 엄마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엄마는 평범한 가정 주부. 남편의 바이러스가 아내를 거쳐 아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남편 역시 ‘보통 직장인’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한 두 번 외박한 적은 있었지만 “다들 있는 일이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가 자기 때문에 에이즈에 걸렸다니….

문제는 둘째 애. 에이즈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임신한 둘째는 이미 6개월째. 엄마가 감염됐어도 출산 전부터 치료받으면 애기 10명중 9명은 감염되지 않고 제왕절개로 출산하면 감염률을 더 낮출 수 있다. 엄마는 치료를 받았고 둘째 애는 다행히 감염되지 않았다.

내가 진료했던 한 가족의 실화다. 이 가족처럼 남편 때문에 아내까지 감염된 부부가 올해 11월 현재 우리나라에 60여 쌍이나 된다. 현재까지 정부에 등록된 감염자는 모두 1200여 명이므로 10명 가운데 1명은 부부 감염인 셈. 우리나라에서도 에이즈가 가정을 파괴하는 전염병이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에이즈를 동성 연애자나 극소수 문제있는 사람들의 병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감염자의 80%가 이성간 성 접촉으로 감염됐다. 대부분 평범한 직장인이며 모범적 가장인데 어쩌다 잘못해서 임질이나 매독에 걸리듯 에이즈에 걸렸다.

세계적으로 에이즈 환자의 80%는 남성. 따라서 에이즈를 퍼뜨리는 주범은 바로 남성이다. 문제는 이들 남성이 자신이 감염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에이즈를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본격 증상이 나타나기까지는 10여년이 걸리므로 이전까지 검사받지 않으면 감염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불안한 일’을 했던 사람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 예비 신랑들도 에이즈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에이즈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니 모르는게 약’이라며 검사를 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에이즈 환자도 제대로 치료받으면 건강을 찾아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감염된 지 6개월 이내에 치료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검사를 받아야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에이즈를 옮기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직도 에이즈 감염자를 대하는 눈길은 차갑다. 감염자임이 알려지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친구들, 심지어 가족마저도 등을 돌리는 게 현실이다.

감염자를 냉대할수록 사람들은 에이즈 검사를 기피하게 된다. 이럴 경우 진단되지 않은 감염자가 많아지며 다른 사람에게 에이즈를 옮길 위험성도 높아지게 된다. 에이즈 감염자를 따뜻하게 대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면 결국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오명돈 교수(서울대 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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