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빅딜]타율 논란, 시너지 효과 미지수

  • 입력 1999년 4월 22일 07시 49분


9개월을 끌어온 현대와 LG그룹간 반도체 통합협상이 사실상 타결됨으로써 재벌그룹 빅딜은 이제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아직 대금지급 방법 등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있지만 인수가격에 합의한 만큼 완전타결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양사의 통합으로 한국은 설비능력에서 세계 1, 2위 메모리업체를 보유하면서 신규투자 부담을 줄여 ‘반도체강국’의 위상을 유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경영주체 선정을 둘러싼 정부 금융권의 압박공세로 ‘타율빅딜’ 논란이 불거지고 재벌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점은 부작용으로 평가된다. 정부 의도대로 통합시너지가 현실화될 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재벌 빅딜의 완결판〓반도체는 현대와 LG 양사의 자산이 20조원에 이르는 매머드급인데다 양 그룹 모두 주력사업으로 점찍어 놓아 ‘빅딜중의 빅딜’로 간주돼왔다.

양사 합쳐 15조원 규모(98년말 기준)의 부채를 안고 있어 제각기 수조원대 설비투자를 단행할 경우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번 통합은 국내 반도체산업의 ‘화근(禍根)’을 제거, 메모리분야의 경쟁력을 다음 세기 초까지 이어갈 수 있는 초석을 다진 것으로 정부는 평가한다.

반도체 빅딜 타결로 9개업종 중 삼성자동차(이달 말 인수계약 체결예정)를 제외한 대부분 업종이 빅딜골격을 마련한 셈이다. 여기에 대우그룹이 조선사업 매각방침을 밝혀 정부의 재벌개혁은 급류를 타고 있다.

▽타결까지 난항의 연속〓지난해 7월 첫 정재계간담회에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반도체 빅딜에 파란이 일어난 것은 정부의 ‘경영주체 선정’ 요구가 돌출되면서부터. 손병두(孫炳斗)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유화 철도차량 항공 등에 대해선 통합형 빅딜안을 받아들이면서 유독 반도체에 대해서만 정부가 경영주체 선정을 요구, 난감한 입장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하반기 들어 반도체산업이 상승국면을 타면서 현대와 LG는 ‘경영권 사수’로 돌아섰다. 결국 전경련이 총대를 메고 선정한 평가기관(미 ADL)이 ‘현대우세’판정을 내리면서 한동안 LG와 정부(채권단)간 대결국면이 조성되기도 했다.

경영주체 선정에 이어 인수가격 협상을 벌이면서 현대와 LG는 상대방에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다. 이 과정을 전경련이 주도하면서 불똥은 회장사인 대우그룹에까지 튀었다.

LG는 눈물을 머금고 반도체를 포기하게 된 원인(遠因)을 상당부분 전경련 탓으로 돌렸고 감정의 앙금 때문에 구회장이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합병후 통합이 문제〓현대는 통합추진팀을 가동하고 이와 별도로 향후 통합사의 제품구성 전략 등을 ADL에 맡겨놓은 상태. 그러나 1천명이 넘는 LG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처리나 주문형반도체 사업정리는 고용문제와 직결돼 적잖은 홍역이 예상된다. LG반도체 관계자는 “경력 7년 이상의 고급인력 중 10% 이상이 이미 퇴사했다”고 밝혔다.

미국업계의 딴지걸기도 요주의 대상. 미의회와 업계는 최근 ‘한국반도체 빅딜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정부의 부채탕감이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위반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김준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출자전환이 시장가치에 맞춰 이뤄진다면 문제가 없지만 미국측의 문제제기는 합병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만큼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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