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이란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억지로 참는 가운데 생기는 신경증의 일종. 병의 특성상 30대 이상의 여성에게 많고 내성적인 남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환자 자신이 남편의 외도라든가 억울하게 사기를 당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병의 원인을 명확하게 얘기한다는 게 특징이다.
화병에는 여러가지 육체적 심리적 증상이 나타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쉬기가 고르지 않으며 두통 소화장애 어지럼증도 생긴다. 정신적으로는 불안 우울 초조 분노 강박관념 성욕감퇴 등의 증상을 복합적으로 호소한다.
경희대 한방병원 화병클리닉 김종우교수는 『목이나 가슴부위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오르고 가슴 중앙을 손으로 눌러봐서 아프면 화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화병은 94년에 발간된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분류총람(DSMⅣ)에 포함돼 미국 정신의학자들도 이 병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정균희교수(신경정신과)는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억울한 일을 많이 경험하면서 이를 감내하는 독특한 감정을 형성하게 됐다』며 『화병이 쌓여 한(恨)이 되거나 한이 화병으로 나타나는 심리상태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화병은 급성이 아닌 만성질환인 경우가 더 많고 진정과 악화의 기복을 거친다는 설명.
한양대의대 김광일교수(정신과)는 문화적 전통에서 화병의 배경을 찾고 있다.
즉 △전통적으로 말보다는 느낌과 행동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유교적 전통에 따라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았으며 △어릴 때부터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훈련을 받지 못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화병으로 악화되거나 폭력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
김교수는 『화병환자는 몸의 이상으로 인해 병이 생긴 것이 아니라 먼저 고통을 참다가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화병을 진정시키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분 나쁜 일에 대해 그 자리에서 차분하게 말로 표현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게 김교수의 조언. 이렇게 하면 상대방에 대한 미움도 적어져 어느 날 갑자기 과격하게 치받는 행동도 자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병 치료에는 인지행동요법 등 심리요법을 쓰거나 항우울제 등 약물요법도 사용된다.
한방에서는 침과 뜸 부항으로 응어리진 기(氣)를 풀어주고 간단한 전통 기공을 가르쳐 예방에 활용하고 있다.
〈김병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