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기괴한 분위기 풍기는 라벨의 왈츠 ‘라 발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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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남녀 몇 쌍이 보이다 사라지곤 한다. 구름이 걷히면,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 찬 넓은 홀이 나타난다. 차츰 밝아지며, 샹들리에가 일제히 켜진다. 1855년경, 어느 궁전의 모습이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사진)이 쓴 피아노곡 ‘라 발스’ 악보에 적혀 있는 작품의 묘사입니다. ‘라 발스’는 프랑스어로 왈츠라는 뜻입니다. 라벨은 왈츠를 사랑했고, 특히 그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왈츠를 자기 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처음 가진 것은 1906년이었지만 작업은 미뤄졌고 14년이 지나 1920년 오늘, 12월 12일에야 처음으로 이 작품이 연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두어 세대 전 다른 나라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하지만, 왜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사람들이 보일까요? 뭔가 초월적인, 현실과 벗어난 것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일까요? 음악도 딱 그 묘사와 같습니다. 조용히 시작되는 첫 부분은 모호하고도 희미해서 왈츠인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구름이 걷힘’을 표현하듯이 솟아오르는 듯한 힘찬 왈츠가 변주되고, 결국 쿵쾅대며 넘어지듯이 소란스럽고도 갑작스럽게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의 작품을 썼을까요, 그것도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빈 왈츠를 모방했다면서?

라벨이 처음 이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이른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의 절정기였습니다. 그러나 1914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은 파국을 맞았고, 전쟁 전과 같은 우아한 시대는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세상은 효율과 기능을 강조하는 강철과 석유냄새의 ‘현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라벨은 이미 지나가고 없는, 돌아가고 싶지만 허깨비같이 사라진 옛날을 묘사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올해 밴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이 라벨의 ‘라 발스’를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연주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모리스 라벨#왈츠#라 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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