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그날, 평양을 적신 거슈윈의 재즈 음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지 거슈윈
조지 거슈윈
벌써 10년이 되어 가는군요. 2008년 2월 26일, 로린 마젤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의 동평양 대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미국 오케스트라의 북한 연주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이 콘서트가 동아시아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로 가는 길을 열었으면”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그 일로 한반도 정세가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뉴욕 필이 평양에서 연주한 곡은 북한과 미국의 국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그리고 조지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이었습니다. 공들인 선곡으로 느껴졌습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에서’는 체코인 작곡가가 ‘미국의 고유한 음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부임한 뒤 미국의 풍토와 선율로부터 영감을 받고 쓴 곡입니다.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은 미국인 여행자가 프랑스 수도에 가서 느낀 이국의 감흥과 고국인 미국에 대한 향수를 그린 작품입니다.

체코인 작곡가 드보르자크에게 미국 음악 수립의 도움을 부탁한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미국 음악은 19세기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대중음악 분야에서 세계를 장악했습니다. 그 대신 클래식 무대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조지 거슈윈의 작품들입니다.

거슈윈은 자신에게 익숙한 재즈의 향취를 고전적인 오케스트라를 통해 구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랩소디 인 블루’, 피아노 협주곡 F장조, ‘파리의 미국인’ 같은 걸작들이 탄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음악이지만 진짜 재즈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재즈는 즉흥성이 중요한데, 이 ‘교향악적 재즈’들은 고전음악 전통에 맞춰 악보 그대로 연주하니까요. 하지만 재즈의 색깔을 대편성 교향악단이 내도록 한 그의 시도는 수많은 사람을 매혹시켰고, 그는 미국 음악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11일)은 거슈윈이 39세의 짧은 생애를 마친 지 80년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들으며 그가 이국에서 느꼈던 잔잔한 우울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이 한없이 미국적인, 셔츠 단추 두세 개 푼 듯한 음악이 평양 청중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도 상상해 보면서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로린 마젤#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조지 거슈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