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파도처럼 일렁이는 알프스 산악에서 아름다운 내려섬을 배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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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가장 아름다운 스키장 ‘에스파스 킬리’

에스파스 킬리 스키장의 티뉴발클라레에서 스키지하철로 오른 라그랑드모트 빙하에서 다운힐은 이렇듯 환상적이다. 화면 가운데 봉우리가 알프스산맥에서는 최고, 지상에서는 열한 번째로 높은 몽블랑(4810m)이다. 에스파스 킬리(프랑스 사부아 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에스파스 킬리 스키장의 티뉴발클라레에서 스키지하철로 오른 라그랑드모트 빙하에서 다운힐은 이렇듯 환상적이다. 화면 가운데 봉우리가 알프스산맥에서는 최고, 지상에서는 열한 번째로 높은 몽블랑(4810m)이다. 에스파스 킬리(프랑스 사부아 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조지 말로리(1886∼1924·영국 등반가)는 이렇게 답했다. “산이 거기 있어서.” 그는 1924년 영국 등정대의 세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에서 실종됐다가 75년 만인 1999년 동사한 모습으로 발견된 산악인이다. 이 ‘현답’이 그 ‘우문’에 정답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그 만 가지 이유를 다 댈 수 없어 에두른 표현이었으니. 그러나 그 질문이 스키어에게 던져진다면 다르다. 왜냐면 그들은 분명한 답을 갖고 있어서다.

그것은 ‘멋지게 내려오기’ 위해서다. 그렇다. 스키는 설산을 멋지고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을 즐기는 스포츠다. 그래서 오르는 수단에는 연연치 않는다. 오직 어떻게 내려오느냐가 관건이다. 스키는 그런 면에서 인생살이에 도움이 된다. 왜일까. 멋지게 내려오는 쉽지 않은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만들므로. 인생에선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서기도 중요하다.

나의 이 말은 장클로드 킬리(1943∼)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1968년 그르노블 겨울올림픽(프랑스 사부아 주) 최고의 스타였다. 알파인스키 삼관왕을 거머쥐며 ‘스키의 전설’이 된 프랑스의 영웅이다. 이후 그의 삶은 올림픽에의 헌신으로 일관했다. 프랑스가 다시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1988년 조직위원장을 맡았고 그 성공적인 개최 후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정됐다(1995년).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러시아)에선 IOC 조정위원장을 맡아 지지부진하던 소치 조직위를 다그쳐 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지도록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현재 그는 72세. 그의 IOC 위원 임기는 80세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해 소치 겨울올림픽 종료 후 스스로 물러났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묻는 언론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 나이 일흔이다. 이제는 내가 있을 자리로 옮겨야 한다”고. 그는 진정한 스키어다. 멋지게 내려갈 줄 아는 사람이므로.

장클로드 킬리는 내 26년 스키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스키를 처음 접한 1989년. 삼복더위 한여름에 비디오테이프의 영상 레슨을 보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던 당시 화면 속의 멋진 스키강사가 바로 그였다. 빨간 스웨터에 하얀 모자를 쓰고 햇빛 쏟아지는 론알프스(프랑스)의 발디제르 설원을 다운힐 하던 그 모습. 거기에 매료돼 나는 늘 그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발디제르에서 멋지게 스키를 타보리라 굳게굳게 다짐했었다. 그 꿈은 1997년 1월 이뤄졌다. 그가 두 살 때 파리에서 옮겨와 성장하며 스키를 처음 배워 탔던 발디제르의 그 알프스산악을 스키로 누비게 된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키장’이라 불리는 ‘에스파스 킬리(Espace Killy)’가 바로 거기다. 에스파스란 프랑스어로 ‘공간(space)’을 뜻한다. 그리고 ‘킬리’는 당연히 장클로드 킬리다. 이곳이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1972년부터. 이제레 계곡 서쪽 사면에 자리 잡은 윗마을 발디제르(1850m)와 아랫마을 티뉴가 스키리프트 시스템으로 연결돼 하나의 스키장으로 운영되면서다. 두 마을은 자동차 도로로는 15분, 스키로는 한 시간 거리. 거기에 ‘킬리의 공간’이란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주민들이 킬리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보답이라도 하듯 킬리는 이 두 마을은 물론이고 론알프스 트랑태즈 계곡의 여러 스키마을(레자크 라플라뉴 메리벨 쿠르슈벨 발토랑스)이 세계적인 스키장이 되는 데 노력했다. 접근성을 높여준 도로 건설이었는데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유치와 운영을 통해서다. 덕분에 올림픽 준비기간 중 이곳에는 국제적인 대규모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합종연횡을 통해 새로이 탄생한 대규모 현대적 시설의 스키장(파라디스키 트루아발레)은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의 빛나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론알프스가 독일과 스위스, 이탈리아를 제치고 알프스산악 최고의 스키휴양지로 각광받는 게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발디제르를 찾은 것은 지난해 12월 초다. 17년 전 초행길엔 발디제르에 묵으며 티뉴를 오갔다. 그러나 이번엔 거꾸로 티뉴의 ‘클럽메드 발클라레’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여기서 발디제르를 오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즌 초 부족한 강설로 눈길이 열리지 않은 것이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은 동전의 양면. 17년 전 온전히 둘러보지 못한 티뉴의 설원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에스파스 킬리가 있는 이제레 계곡은 론알프스와 이탈리아를 이어주는 고갯길의 초입. 발디제르에서 국경까지는 불과 5km 거리다. 그런 발디제르는 연중 8개월이나 눈에 갇혀 지내야 하는 깡촌이자 고갯길의 유서 깊은 마을. 반대로 티뉴는 2차대전 종전 후 이제레 계곡에 들어선 수력 댐으로 수몰된 이주민을 위해 새로 조성한 마을. 해발 2100m 위아래에 세 개, 1400m의 댐 아래에 2개 등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마을로 구성됐는데 애초부터 스키휴양마을로 조성됐다. 내가 묵은 클럽메드는 이 중에서도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티뉴발클라레 마을(2300m)에 있다.

고도차 932m에 최고경사 30도의 지하레일(3484m)을 6분 만에 주파하는 티뉴발클라레의 스키지하철.
고도차 932m에 최고경사 30도의 지하레일(3484m)을 6분 만에 주파하는 티뉴발클라레의 스키지하철.
에스파스 킬리에는 아주 특별한 리프트가 있다. 스키지하철이다. 내가 가본 지구촌 140여 개 스키장 가운데 이런 시설을 갖춘 곳은 단 두 곳뿐. 다른 하나는 호주의 페리셔블루 스키장(뉴사우스웨일스 주)이다. 말 그대로 이건 지하철이다. 다른 점이라면 급경사 레일과 소형객차, 스키거치대가 있는 실내, 짧은 노선에 중간 역이 없다는 점뿐. 발디제르와 티뉴발클라레에 한 기씩 있는데 티뉴발클라레에선 6분 만에 티뉴 산악의 최고봉 라그랑드모트(3656m) 아래 빙하지대(3032m)로 스키어를 올려다준다.

오전 9시 15분. 첫차는 알프스 설산에 매료당한 성마른 스키어들로 늘 만원이다. 그렇게 오른 빙하지대의 설원. 지하철역을 나서자 햇볕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그 빛이 어찌나 강한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다. 그렇게 대면한 티뉴의 설원. 바로 이 사진이다. 설산의 고봉은 저마다 까치발로 키 재기 하듯 하늘로 치솟아 있다. 그 순백 암봉의 군무가 숨을 앗아갈 듯 기막히다.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인데 사람마다 다른 얼굴처럼 봉우리 역시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 봉우리 아래로 구름까지 드리우니 선경이 따로 없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4810m)도 정면에 똑똑히 보였다.

티뉴의 알프스설원은 트레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별 의미가 없다. 온통 눈밭을 새벽 2시부터 정설차로 다져두니 트레일을 벗어난 곳도 원하면 어디서든 다운힐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질은 또 어떻고. 그중에서도 라그랑드모트 봉 아래 빙하지대가 최상이다. 트레일도 폭이 50∼60m나 될 만큼 넓다. 거기에다 워낙 넓어 붐비지 않으니 스키를 즐기기엔 아무런 제약이 없다. 가끔은 나 홀로 이 자연을 송두리째 소유한 듯 아무도 없는 슬로프에서 혼자 다운힐을 하는 경험도 한다.

마침 그날 티뉴 스키장에선 바시티 트립(Var-sity Trip)이 한창이었다. 영국의 두 명문사학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생이 참가하는 1주간의 연례 스키 여행(1922년 개시)인데 수백 명이 이제 막 문을 연 이곳을 찾아 웃고 마시고 떠들며 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티뉴를 찾았다는데 그 이유를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스키는 물론이고 애프터스키 역시 최고여서.” 애프터스키란 스키를 마친 후 즐기는 여흥과 휴식. 수수하며 한가로운 이 마을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매력적인 바, 레스토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에스파스 킬리의 유서 깊은 스키마을 발디제르.
에스파스 킬리의 유서 깊은 스키마을 발디제르.
▼Travel Info▼

항공편: 론알프스(프랑스)로 스키여행을 할 때는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경유 제네바(스위스) 왕복노선의 에티하드항공을 권한다. 귀국편의 16시간 대기(아부다비) 중에 두바이 한나절 투어(유료패키지 한국인 가이드)를 겸할 수 있어서다. 인천∼아부다비(10시간 40분 소요), 아부다비∼제네바(7시간 20분 소요), 제네바∼티뉴는 자동차로 2시간 반 소요. 아부다비공항∼두바이시내는 에티하드항공 셔틀버스 이용(1시간 반 소요·예약필수). 두바이 시티투어는 현지 한국인여행사를 이용한다. 아랍에미리트국영항공사 에티하드항공(www.etihad.com/ko-kr)

티뉴 스키장: 다섯 개 마을 모두 스키리프트와 무료 마을버스로 연결된다. 전체지역의 스키슬로프 표고 차는 1906m, 트레일 총연장은 300km. 난이도로 보면 초급 20, 중급 67, 고급 41, 최상급 26개. 주의할 점은 오후에 발디제르 혹은 티뉴로 돌아갈 때 마지막 리프트 승차 지점과 시간을 알아두는 것. 그걸 놓치면 유료버스를 이용한다. 시즌오픈은 12월 초지만 라그랑드모트 빙하지대는 10월 4일에 연다. 시즌종료는 티뉴 5월 10일, 발디제르 5월 3일. 티뉴발클라레마을엔 휴양객을 위한 스튜디오 형태의 아파트가 많은데 1주일 단위(일요일 체크인)로 빌려준다. www.tignes.net

에스파스 킬리(프랑스 사부아 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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