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제철소-홈쇼핑 직원 “일 멈출수 없어”… 명절 스트레스 주부 “저, 당직할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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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쉬는 사람들, 안 쉬는 사람들

추석에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피할 수 없어서이지만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강부 2제강공장에서 일하는 이상수 전로 주임(47)은 추석 당일인 8일부터 11일까지 일한다. 괜찮다. 28년 동안 명절 당일에 고향(강원도)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철소에는 휴일이 없다. 고로 가동을 멈추면 다시 온도를 끌어올리기까지 최소 5개월이 걸려서다. 당연히 1년 내내 쉬지 않고 나오는 쇳물을 뽑아낼 사람도 필요하다. 포항제철소는 휴일과 관계없이 4일 일하고 4일 쉬는 체제(4조 2교대)다. 그래도 명절에는 팀원들끼리 근무 일정을 조정한다. 부모가 외지에 있으면 이틀이라도 다녀올 수 있게 서로 양보한다. 이 주임은 명절 전후에나 큰형 집을 찾는 만큼 부모 제사는 못 지내지만 자식들이 대신 잘 해준다고 믿는다.

명절 근무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이 주임은 “국가의 중요한 기초 소재산업인데 이왕이면 즐겁게 일해야 한다”며 웃었다. 명절에는 식당도 쉬는 탓에 컵라면이나 레토르트 음식을 먹지만 명절 분위기도 난다.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온 직원들이 음식을 넉넉히 갖고 와 나눠 먹는다.

“어머님∼ 명절 차례상 준비하느라 힘드셨죠? 아버님에게 가스레인지 좀 사달라고 하세요.” 현대홈쇼핑 쇼호스트 서경환 씨(29)는 5년째 명절 때 TV 화면으로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2012년 입사 전 한 게임 전문 방송에서 ‘한가위맞이 게임전 중계’를 담당했다. 현대홈쇼핑 입사 뒤로도 연휴 판매 방송을 진행 중이다.

회사는 명절 판매 방송 때마다 키 189cm에 착한 아들 이미지인 서 씨를 찾는다. 올해도 역시 견과류와 가전제품 판매 방송에 투입됐다. 서 씨는 “명절 판매 방송 때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기분이 든다. 이번에는 부산에 있는 외삼촌을 외쳐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행사에서 일하는 김모 씨(33·여)는 명절 당직근무를 자청했다. 종일 음식 하느라 허리도 못 펴는데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못 듣는 게 서러워서다. 돌아오는 길에는 꼭 남편과 싸웠다. 김 씨는 무임금 노동을 하느니 수당이라도 받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시댁에는 “우리 회사는 명절이 성수기다. 평소 아이 때문에 배려를 받으니 이럴 때 내가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결혼 전에는 왜 여자 선배들이 유독 명절 때 일하려고 하는지 이해 못 했는데 이제 알 것 같다”고 했다.

대기업 대리인 강모 씨(35)는 2012년부터 명절이면 서울 경기권 유명 관광지나 호텔을 찾는다. 차례를 지내는 큰집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은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당직근무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일부러 빠진다. 큰어머니와 작은어머니를 중심으로 “왜 아직 결혼을 안 하니” “만나는 여자는 있니” 같은 질문이 쏟아질 때면 김 씨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김 씨는 “내가 어떤 인생 계획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잔소리부터 하는 모습에 지쳤다”며 “마음 맞는 친구들과 보내거나 혼자 쉬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권기범 기자
#추석#당직#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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