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中企 적합업종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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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에 빵집이나 두부, 간장,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같은 100여 개 품목을 취급하지 말라고 지정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3년 시행 기간이 끝납니다. 이 중 82개 품목에 대해 재지정을 할 것인지(9월 결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했다가 폐지됐으나 동반성장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다시 시행된 제도입니다. 대기업들은 “국내 기업들이 빠진 자리에 외국계 기업만 들어와 이득을 보고 있다.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안 되는 대표적인 규제”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시장에 마구 진출하는 기업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대기업 떠난 자리에 외국기업만 이익, 폐지해야”▼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주요 품목 재지정 시한이 다가오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의 자구 노력을 조건으로 일정 품목에 대해 대기업의 진입을 제한하거나 기존 기업이 더이상 설비투자 등을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과거 실패한 정책으로 폐기되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 대기업이 시장에서 불공정거래를 했는지 묻지 않고 단지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사업을 못하게 하는 강력한 규제라는 점이 지적되면서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3년 시한으로 도입되었고, 필요시 3년 재지정이라는 타협점을 모색하였다. 소위 ‘일몰 규제’적 성격으로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일몰 규제가 그렇듯 원칙적으로 시한이 도래하면 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연장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면 제한적인 수준에서 예외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적합업종 지정 시 중소기업들이 약속했던 자구 노력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시간이 모자라 자생력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이 입증될 때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제도 유지에 따른 효과보다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크다면 재지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당 시장이 줄어들었다거나 대기업이 빠진 자리에 외국계 기업이 파고들었다거나, 혜택이 골고루 가지 않고 몇몇 중소기업에만 돌아가 독점력이 오히려 증가했다거나 하는 경우다. 또 가격 상승을 초래하여 소비자 후생이 감소했다거나 하는 등의 부작용은 없었는지 같은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기회에 적합업종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호를 위한 칸막이, 체급 나누기가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해당 기업이 어떻게, 어떤 노력으로 성장했는지 묻지 않고 규모가 크다고 일단 사업 활동부터 제한하는 적합업종제도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을 수 있다. 성장억제제 혹은 성장한계선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실례로 샘표식품은 간장업종 전문기업으로 성장하여 소위 대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간장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풀무원 역시 지난 30여 년간 두부사업으로 식품전문 대기업이 되었으나 적합업종 지정으로 사업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

또한 칸막이를 통한 보호가 오히려 새로운 사업으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 자영업은 일부 업종에 지나치게 많은 사업자가 몰려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국내 자영업자 비중은 2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인 16.1%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미국 7%에 비하면 최대 4배나 많은 상황이다. 과당 업종에 대한 정책적 보호는 종사자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할 우려가 크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실태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9.1%만이 적합업종제도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보호정책이 큰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직업 등으로 전환토록 유도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에 세계 시장은 새로운 기회가 된다. 국내 시장에서 대기업과의 경쟁은 글로벌 경쟁의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전초전에서 이긴 중소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석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보호에 안주할 경우 외국 시장은커녕 우리 시장마저 외국에 뺏길 우려가 커진다. 과거 조명 시장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오스람, 필립스 등 외국 대기업이 우리 안방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아가 경쟁력의 저하는 소비자 외면으로 이어져 시장 자체가 축소될 우려도 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시행되었던 1991∼2001년 중 고유업종이 속한 산업의 사업체 수 비중은 1.3%포인트 감소했고, 생산액과 종사자 수 비중은 각각 4.3%포인트, 2%포인트 감소했다는 사실이 이를 간접 증명한다. 중소기업 보호 목적으로 도입, 운영되었던 고유업종제도가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키고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폐기되었다는 역사적 경험을 되새길 시점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대기업 탐욕 계속되는한 中企보호 위해 필요”▼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해주던 고유업종제도가 2006년에 폐지된 이후 우리의 산업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제도가 폐지된 지 채 5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사업 확장이 일어나 중소기업과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지금은 언론의 지탄을 받고 주춤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기업은 제빵·제과업 및 음식점으로 진출했음은 물론이고 하청업체의 사업영역이나 영세한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 분야로의 진출도 두드러졌다.

기업의 사업영역은 경쟁질서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기업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기존 기업과의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기업들의 사업 영역 확대를 더이상 사업 다각화라는 명분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민간 자율 합의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품목들은 3년간 보호를 받는다. 올 하반기가 되면 보호기간 3년이 지나 두부, 재생타이어, 김치, 어묵 등 82개 품목이 재지정을 앞두고 있다.

최근 적합업종 품목의 재지정을 앞두고 대·중소기업 간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문제는 대기업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관계를 벗어나 ‘흠집 내기’ 수준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적합업종에 대한 찬반 의견 개진은 바람직하지만 있지도 않은 일을 부풀려서 얘기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커피, 단체급식 등 적합업종이 아닌 품목을 적합업종으로 잘못 인용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외국계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커졌다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등이나 재생타이어의 경우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내 시장 규모 및 구매 특성을 무시하고 일부 내용을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국내 음식점이 사라지자 초밥집 같은 일본계 음식점 수가 늘어났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국내 대기업이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를 일본계로 오해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 식품 전문기업에 두부를 만들지 못하게 하자 이 기업에 콩을 납품하던 농민들이 도산 위기에 몰렸다고 하는데 이는 작년에 콩 작황이 풍작을 기록하면서 콩 생산 농가들의 어려움이 가중된 탓이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적합업종 탓으로 돌리고 있다. 대기업 두부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의 두부 시장 점유율은 2010년 79.8%에서 2012년 81.8%로 높아졌다. 이는 두부는 팔지 못하되 포장두부는 팔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포장두부 시장은 전체 두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에 대기업은 별로 피해를 보지 않았다.

적합업종제도는 과거 고유업종제도와는 달리 법으로 정하지 않고 민간 자율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제도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줄이기 위해 3년간의 운영 성과를 평가하여 재지정 여부를 정하도록 ‘일몰제’를 도입하였으며 중소기업에도 자구 노력을 부여하였다.

대기업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적합업종이 부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인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는 복수의 연구기관을 지정하여 3년간의 운영 성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재지정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라 재지정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유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006년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이후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중소기업 사업 영역을 보호하거나 사업 이양을 추진했더라면 적합업종제도를 도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3년 전 상황을 망각한 채 적합업종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 앞서 양쪽이 역동적인 기업생태계를 이루어 공존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해법은 교섭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기업이 쥐고 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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