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윤종구]‘두 개의 일본’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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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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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 도쿄 특파원
윤종구 도쿄 특파원
지난주 막을 내린 일본 NHK 아침 드라마 ‘오히사마’(해님)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3남매 중 막내인 딸 앞에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있다. 내일이면 딸은 시집을 간다.

“요코(陽子), 오랜 세월 많은 신세를 졌구나. 21년간 딸로 있어줘서 고맙다. 너와 함께했던 21년, 정말 행복했다.”(아버지)

“아버지, 저야말로 긴 세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딸이어서 요코는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딸)

“고맙고 또 고맙다. 부디 행복하거라.”(아버지)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의 눈엔 이슬이 맺힌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집안일을 도맡았던 딸에게 아버지는 최대한 예를 갖추면서도 정을 듬뿍 담아낸다.

일본에선 윗사람이라도 감사를 표하거나 사과할 땐 아랫사람 앞에서 깍듯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경어를 쓰는 게 보통이다. 평소엔 말을 놓다가도 부부싸움을 할 땐 경어를 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본이야말로 동방예의지국이 아닐까. 아마추어 야구경기를 유심히 보면 의아한 모습이 눈에 띈다. 선수들은 운동장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모자를 벗고 “고맙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인다. 텅 빈 운동장을 향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누군가 운동장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있기에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들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다. 운동장 그 자체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있다. 유도나 검도, 스모 선수도 마찬가지다.

일본 사람과 헤어질 땐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이 돌아서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기 때문이다. 길을 물으면 가던 길을 되돌아와 목적지까지 바래다주는 친절은 미담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런 일본이 일에는 철두철미하다. 사회 어느 분야든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느라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확실한 신뢰를 심어준다. 인부 2, 3명이 투입되는 도로공사에 안전요원 5, 6명이 배치되는 것은 보통이다.

이런 일본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에 우왕좌왕하자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대체 일본이 왜 이렇게 됐느냐고. 태풍으로 수십 명이 숨지거나 허술한 안전사고가 터지면 “일본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느냐”며 신기한 듯 반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놀랄 것 없다. 일본엔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철에선 백발노인이 앞에 와도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식당이나 지하철에서 하도 떠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꽤 있다. 자동차 경적소리도 수시로 들린다.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없던 풍경이다. 식당에선 어린애 바로 옆 테이블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많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비리사건도 적지 않다. 배려 많고 예의바른 일본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다. 앞으로는 이런 모습이 더 많아질 것이다. 주로 젊은이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북한에 의한 자국민 10여 명의 납치사건에 온 나라가 공분하면서 수십 년째 추적 수사를 계속하고 가난한 나라를 꾸준히 원조하는 걸 보면 보편적 인류애가 투철한 것 같지만 정반대의 얼굴도 있다. 이웃나라 수십만 명의 인생을 짓밟은 징병 징용 군위안부 문제에는 애써 눈을 감는 그들이다.

한국엔 일본의 단면만 보고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과거 역사와 얽힌 감정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과 어깨를 견주게 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이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엔 ‘두 개의 일본’이 있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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