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佛민심은 왜 사르코지를 거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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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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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프랑스 대선 레이스를 보면 지도자와 리더십을 평가하는 국민의 새로운 트렌드 같은 게 느껴진다. 여론조사만 볼 때 내년 5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프랑스는 17년 만에 좌파로 정권이 바뀔 확률이 높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냥 싫다”는 목소리가 너무 크다.

사실 사르코지는 많은 일을 했다. 아랍 국가와 독일 이탈리아 등 동맹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 42년 독재 통치를 끝장내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의 배짱은 지난해 가을 범국민적 저항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데서 여실히 입증됐다. 이로 인해 그는 상당한 지지율을 까먹었지만 서구 언론과 시장경제학자는 “국민은 사르코지가 옳았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옳다는 판단이 서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이 고집쟁이는 최근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며 부유세 확대를 추진 중이다. 요즘 재정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콧대 높은 독일에 그나마 한마디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프랑스만 쳐다본다. 사르코지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지만 매번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한 번만 도와 달라’는 읍소를 거듭한다.

그런데도 민심은 왜 사르코지를 거부할까.

그는 부자 친구들과의 돈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로레알그룹 대주주 릴리안 베탕쿠르 씨에게서 대선 전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아 측근인 에리크 뵈르트 전 노동부 장관은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그의 측근 2명은 1995년 파키스탄에 무기를 판매한 대가로 조성된 불법 자금을 프랑스로 몰래 들여온 것이 적발돼 구속됐다. 일명 ‘카라치 게이트’다.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취임하기 전 친구인 언론재벌 뱅상 볼로레의 초호화 요트에서 휴가를 즐겨 엄청난 ‘욕’을 먹었지만 그는 사과는커녕 “휴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큰소리쳤다. 국내에도 유명한 루이뷔통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그의 ‘절친’이다.

사르코지는 따뜻하지 못했다. 정적인 도미니크 드빌팽 전 총리는 2004년 사르코지의 뇌물 수수 제보를 받아 수사 지시를 했다 이를 마음속에 꾹 담아 뒀던 그는 대통령이 되자 “맛 좀 봐라”며 드빌팽 전 총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은 신경 쓰지 않았다. 30년간 국민 앵커로 사랑받았던 파트리크 푸아브르 다르보르 전 TF1 뉴스진행자가 2007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때 “키 작은 소년이 키 큰 선수들이 뛰는 운동장에 들어가려 한다”며 작은 키에 엄청난 콤플렉스를 가진 사르코지를 비꼬았다. 그러자 그는 친한 친구이자 아들의 대부인 마르탱 부이그 TF1 소유주에게 다르보르를 해고하라고 요청했다.

사르코지는 권력기관을 사유화했다. 국내정보국(DCRI)에 시켜 자신의 외도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뒷조사를 했고, ‘베탕쿠르 스캔들’ 특종 보도를 한 기자들의 취재원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정보국은 기자를 도청해 취재원을 찾아냈고 당사자는 공직에서 사퇴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취재원을 밝히는 어리석은 기자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분명한 건 프랑스 국민은 국제무대에서 국가 위상을 높이고 장기적 안목에서 국익에 부합한 정책들을 추진한 지도자 사르코지는 별로 안중에 없다는 점이다. 내 연금을 줄게 만든 사람, 부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돈 문제가 복잡한 사람, 화가 나면 공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사람으로 사르코지를 보고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국민에게 인간적 신뢰를 주는 솔선수범 없이는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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